성주 성지
소태산 대종사 열반 후 법통을 계승한 정산종사와 그의 아우 송도성이 탄생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동 일대를 말합니다.
정산은 1900년 8월 4일, 송도성은 1907년 11월 19일 성주군 초전면 소성동에서 각각 출생하고, 박실에서 성장했다. 정산은 17세에, 송도성은 13세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정산과 송도성의 탄생 및 성장지인 성주는 1970년(원기55) 교화를 시작한 이래, 1976년(원기61) 6월 10일에 이르러 비로소 성주에 선교소를 세우고 봉불식을 하게 되었으며, 1977년(원기62) 5월 30일 교정원 원의회에서 성주선교소는 성주교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당시 성주는 영산ㆍ익산ㆍ변산ㆍ만덕산과 더불어 성지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성지로 규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교단에서는 1983년(원기68) 4월 28일 박실 고택 유적지를 확보하고, 9월 15일에 중앙문화원에서 고창 연화봉ㆍ정읍 화해리ㆍ진안 만덕산ㆍ성주 박실 등 4곳의 중요 사적지에 각각 기념비를 세울 것을 결의했습니다.
동년 11월 9일에 ‘원불교 사적지ㆍ정산종사 성장 구도지’의 임시 표목을 세우고, 이듬해 12월 3일에는 박실 옛 집터에 높이 약 4.5m의 대형 사적비인 ‘소성구도비韶成求道碑)’를 세웠습니다. 소성구도비는 거북좌대와 용트림 갓석의 전통양식으로 제작되었는데, 비문은 이공전이 짓고, 박정훈이 썼다. 1988년(원기73) 4월 22일에는 성주성지의 구도 성장지 제2차 장엄공사를 완공하고, 10월 13일에 성주성지의 일부 성역화사업 준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준공식에서 대산종사는 “대종사님이 하늘이요 태양이시라면 정산종사님은 땅이요 명월이시며, 대종사님이 우리의 정신을 낳아주신 영부시라면 정산종사님은 그 정신을 길러주신 법모시라”고 말한 후, “정산종사께서 탄생하시고 구도 성장하신 성주성지는 영산ㆍ변산ㆍ중앙총부ㆍ만덕산 등 4대성지와 함께 우리 회상의 역사와 더불어 온 인류가 길이 추모하고 순례할 거룩한 성지”라고 밝혔습니다.
그 후 1993년(원기78) 4월 6일 이성규ㆍ류순명 교도의 정재 희사로 비로소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464번지의 정산과 송도성의 탄생가를 인수했습니다. 1994년(원기79) 2월 17일 개최된 제21회 사적관리위원회에서는 정산의 탄생가를 복원하기로 결의하여, 5월 15일 복원 기공식을 가졌으며, 7월에 완공했습니다. 1998년(원기83) 8월 26일 정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에서는 ‘원불교 성주성지 건축계획안’으로 대법당 및 기도실을 포함한 건축물을 세우기로 하고, 1999년(원기84) 5월 4일에는 성주성지 기념법당 상량식을 거행했으며, 2000년(원기85) 6월 20일에 준공 및 기념법당 봉불식을 거행했다. 상량문에는 좌산종사가 ‘경륜통우주 신의관고금經綸通宇宙 信義貫古今’(《정산종사법어》 공도편1)의 법문을 친필로 썼습니다.
1999년 8월 3일에는 성주성지 기도실 상량식을 거행했는데, 상량문에는 정산이 지은 ‘영주靈呪’ 가운데 앞부분인 ‘천지영기아심정 만사여의아심통天地靈氣我心定 萬事如意我心通’을 이공전이 썼습니다. 성주성지 기도실은 정산의 구도 성장지 옛 집터 몸체자리에 중앙문화원이 세웠던 ‘소성구도지비’를 거북바위 방향으로 이건移建하고, 기념비가 서 있던 자리에 지었습니다. 2000년(원기85) 7월 6일 임시수위단회에서는 원불교 사적을 성적지ㆍ사적지ㆍ유적지로 분류하고, 성적지 26곳, 사적지 9곳, 유적지 12곳으로 분류함으로써, 정산과 송도성의 탄생터와 박실구도지가 성적지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로서 1984년(원기69) 박실집터 매입으로부터 시작하여 구도지비 건립, 정산의 탄생가 복원(1994년)에 이어 ‘정산종사탄생100주년’을 기념하여 대각전ㆍ원불당ㆍ성지순례객 숙소 등을 건축함으로써 성주성지 성역화사업은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