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8부 열반법문

생사(生死)의 도(道)

생사(生死)의 도(道)

현 세계(世界)의 모든 학설(學說)을 볼진대 대개가 낳아서 사는 도(道)는 밝혔으나 죽어서 돌아가는 도(道)는 밝히지 아니하였고 몇몇 종교(宗敎)가 혹 좀 밝혔다고 하나 충분치 못하다. 그러나 우리 불교(佛敎)에 있어서는 낳아서 사는 도와, 죽어서 돌아가는 도를 똑같이 잘 밝혀 놓았기 때문에 도 가운데는 대도(大道)요, 교(敎)가운데는 원만한 교라고 이르지 아니 할 수 없다.
일찌기 3천년 전에 석가여래께서는 6년 설산 고행에 대도를 깨달으시어 49년간 무량 묘의의 백천 법문을 설하셨고, 그 후로도 역대 조사가 계계승승하여서 팔만장경이 되었으나 그 진리를 한 말로써 말하자면 원상을 중심으로 해서 생멸(生滅) 없는 진리와 인과(因果) 있는 진리를 밝혔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대종사께서도 그 진리를 밝혀 가라사대『대 우주의 진리는 생함이 없는지라 멸함도 없고 멸함이 없는지라 또한 생함도 없어서 길이길이 쉴새 없이 돌고 도나니 가는 자가 곧 오는 자가 되고, 오는 자가 곧 가는 자가 되며, 주는 자가 곧 받는 자가 되고, 받는 자가 곧 주는 자가 되는 것이 만고에 변함이 없는 대진리라.』하셨으며, 또 가라사대『범상한 사람은 현세에 먹고 사는 것만 큰 일로 알지마는 지각이 열린 사람은 죽는 일도 사는 일과 같이 크게 아나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죽는 도를 잘 알아서 잘 죽는 사람은 내생에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은 잘 죽을 수 있는 불가 분리의 관계가 있어 생은 사의 근본(生卽死之根)이요, 사는 생의 근본(死卽生之根)이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니라.』하시고『그러므로 사람이 벌써 나이가 40만 되면 죽어 가는 도를 알아 가지고 그에 많은 준비가 있어야만 도(道) 있게 죽으리라.』하셨나니 과거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하신 말씀을 생각하여 볼진대 나서 사는 것이나 죽어서 돌아가는 것이 어찌 조금인들 다름이 있으랴.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살고 죽는 것과 도인들의 살고 죽는 데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사는 것은 진리를 모르고 순전히 사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그 실례(實例)를 들자면, 첫째 좋은 음식을 먹는 재미로 살고 또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한 희망으로 살며, 둘째 좋은 의복을 입는 재미로 살로 또는 좋은 의복을 입기 위한 희망으로 살며, 셋째 좋은 집에서 사는 재미로 살고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한 희망으로 살며, 넷째 복과 죄가 어느 곳으로부터 오는 원인을 모르고 살며, 다섯째 자타의 국한과 한 가정의 범위를 벗어 나서 사는 사람이 귀하며, 여섯째는 재색·명리 이외의 딴 재미를 가진 사람이 극히 귀하나니 그의 일생에 하는 일은 마음은 다 도적 맞아 버리고 깨끗한 정신은 다 흩어 버리는 재미로 산다 하여도 틀림이 없다. 또한 죽는데 있어서도, 첫째 무명(無明)의 업력에 끌려서 착심으로 죽게 되며, 둘째 전도 몽상으로 헤매이다가 죽게 되며, 셋째는 부자유하게 속박으로 죽게 된다.
그러나 도인들의 살고 죽는 것은 그와 정반대로 진리로써 생활을 하고, 생활 가운데서 진리를 찾나니 그 사는 데 있어서의 실례를 들자면, 첫째 일심을 모으는 재미로 살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일원(一圓)에 계합하는 재미로 살며, 둘째 진리를 하나 하나 알아가는 재미로 살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사리간에 걸림없이 아는 재미로 살며, 셋째 아는 것을 실행 하는 재미로 살고 한 걸음 더 들어 가면 마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 하는 재미로 살며, 넷째 죄(罪)와 복(福)이 다 제가 짓고 제가 받는 이치(理致)를 알고 살며, 다섯째 천하(天下)를 한 집안 삼고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世界)의 육도 사생을 한 권속으로 여겨서 무슨 방면으로든지 그들에게 복혜의 문로(門路)를 열어 주어서 위로 진급(進級)을 시키고 아래로 강급이 되지 않게 하는 재미로 사는 것이다.
죽는데 있어서도 범인과는 정반대이니 첫째 지혜의 등불을 밝힘으로써 청정 일념으로 길을 떠나게 되며, 둘째 정견이 됨으로써 헤매는 바가 없이 바르게 떠나게 되며 탐진치를 항복 받으므로써 시방 삼계를 자유(自由)로 가고오나니 보통 사람의 살고 죽는 것과 도가 있는 사람의 살고 죽는 것을 비교하면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고귀한 생활을 하는 사람 일지라도 수도인의 살고 죽는 것에 비할 것 같으면 소꿉장난에 지나지 못하고 일조(一朝)의 꿈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상인으로부터 최하인에 이르기까지 이 생사의 도를 아니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천하의 대도라고 일렀나니 삼계의 모든 중생은 이 생사의 도를 오득하는 것이 진실로 일대사(一大事)가 될 것이다. 송(頌)하여 가로되,
낳아서 옴에 낳는 것이 낳는 바가 없고, 죽어서 감에 죽는 것이 죽는 바가 없도다.
남이 없는지라 또한 죽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 한지라 또한 남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