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8부 열반법문

덕산 조희석 정사(德山趙喜錫正師) 영전에

덕산 조희석 정사(德山趙喜錫正師) 영전에

1.발인식 법문
우리들이 한 서원(誓願) 한 마음으로 와도 그 일이요 가도 그 일인지라 대종사님께서 새 주세불(主世佛)님으로 새 회상(會上)펴시려 이 땅에 오심에 또한 약속따라 법사께서도 회상 초창(初創)에 오시어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42개 성상(星霜)을 맡으시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들이 커지고 발전하므로 항상 덕의 꽃이 피어 어느 기관 어느 교당이 보화당의 협조를 입지 아니한 바가 없습니다.
법사(法師)께서는 6·25의 국난을 전후하여 교단의 외교를 맡아 활동하면서 교단의 어려움을 잘도 풀어 주었고, 난세인 그 때에 교단 인재 보호에 혈심(血心)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재(人材)들이 다 무사히 난을 넘기고 자라게 됨으로써 그 분들이 오늘날 이 교단에 없어서는 안될 중견(重堅) 간부(幹部)들이 되어 큰 일들을 하고 있으니 그 숨은 공덕(功德) 크며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에게 큰 보은(報恩)을 하였습니다. 또한 일생 산업의 전선(前線)에 서서 상(商)의 도(道)를 구현(具現)시켜 공부로 사업하고 사업으로 공부하는 표본을 세우는데 힘이 되시었습니다. 또한 총부유지(總部維持)와 그 재단의 생불불사(生佛佛事)에 수십년 전담하였으며 육영생(育英生) 육성과 교화 재단이며 근래에는 훈련원(訓練院)에 필생사업으로 큰 힘을 다하시어 교단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니 앞으로 천(千)의 만(萬)의 덕산(德山)의 솟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업적(業蹟) 교단사에 길이 빛나고 후학들의 흠모하며 받드는 바가 될 것입니다. 이에 한 게송(偈頌)으로 영생(永生)을 비옵나니
오면 정녕이 가는 것
가면 정녕이 오는 것
주면 반드시 받는 것
받으면 반드시 주는 것이니
이 대도(大道) 사이에 세세생생(世世生生) 큰 서원(誓願) 세우시고 오고가는데 자유(自由)로운 큰 도력(道力)을 오는 생에는 더욱 많이 쌓으소서.
-원기 63년 1월 4일-

2. 빈소에서의 법설
본래 이 어른이 서원이 크셨고 호 그대로 덕산이셨다. 어려운 보화당의 사업기관에서 공사간에 애로 있는 일이 많이 계실 것이지만 짜증냈다고 들은 바가 없다. 보통 원력과 덕이 아니면 조그마한 기관 하나만 갖더라도 어려운 일이 많이 있을 텐데 평생을 덕으로 일관하셨다. 8·15 해방과 6·25를 지내며 우리가 늘 같이 동거동락을 했지마는 충부 형편이 저녁을 굶고 모두 그런 어려운 시기에 재무부장을 할 때 내가 교정원장으로 있을 때「이런 일이 있는 데 어쩌면 쓰겠읍니까」하면 경제라는 것은 머리를 앓는 장소가 돼서 짜증을 낼 테지마는 「아 해봅시다.」하고 열이면 열 번, 백이면 백 번 해보자고 하시지 반대해 본 일은 없다. 그래서 열에 다섯 여섯 성공되는 일도 있고, 못되는 일이 있었어도 면전에 단한번「이것 못씁니다.」라고 말하신 적이 없다. 그래서 항시 그 일이 원성(圓成)이 되고 커지고 그런 걸 볼 때 이 어른이 이생애 수양뿐 아니라 전생에도 많이 덕을 쌓은 어른이다.
그러니 우리 교단생활을 할 때 어려운 일을 맡을 때에 의론하고 연구하고 앞으로 또 생각해 보자고 하고 서로 정이 건네야 한다. 청년들이 6·25를 당해서 숨쉴 틈이 없을 때 선종법사님이「덕산, 이런 일이 있다니 어쩔텐가.」「나가 보죠.」하고 두루마기를 입고 간다. 그 이튿날도「그런 일이 있다니 어찌하겠는가.」「예! 가 보죠.」하고 가지 「안됩니다. 못 갑니다.」그런 말씀이 없으시다. 그러기 때문에 풀린 일이 열에 여섯 일곱은 다 풀렸다.
선대의 유산이 이것이다. 재무부장 어쩌냐, 대종사님께서「도산이 공부에도, 교화에도 소질이 있는 분을 사업계에 맡겨서 일생을 마치게 한 것이 마음 아프다.」하셨는데 이 양반도 교화계로 만 밀어 버렸어도 소질이 있는 양반이다.
십년 전인가 신도안에서 한 달 계실 때 글도 짓고 글씨를 썼는데 소질이 있으셨다.「이러니 모두 수도를 하려는가 봅니다.」하면서 글도 짓고 쓴 것이 소질이 있는 양반이셨다 . 그 초창에 그런 곳에서 어려운 생활을 했으니 이 회상이 되었지 그냥 되었겠느냐 이 어른이 재무부장으로 있을 때 그 고생을 하고 어려운 생활할 때 상산법사 계실 때 우리 부산 일대로 한번 쉬러 갑시다 해서 모두 그럽시다 해서 마산으로 한 20일 예정으로갔는데 3일 지내더니 덕산 법사님이「나는 쉬지들 못 하겠소, 못 살겠소, 내가 가서 활발히 일도 거들고 뭣 좀 해줘야 하는 데 일은 않고 가만히 앉았으니 병이 날 것 같소.」「그러나, 있어 봅시다」하고 일주일 되니 드어누어 버리셨다. 나는 쉬러 다닌 줄 알았는데 이 양반은 고통이셨던 모양이더라. 그래서 주소 일념 계속해서 보화당에 지금까지 계신 지가 몇해 됐느냐, 이 근자에는 못했지만 그 전에는 내가 지방에 갔다 오면 꼭 보화당에서 잤다. 여름이 되었든 겨울이 되었든 지금은 어떠한지 몰라도 여름에 거기서 자면 숨이 막힌다. 그래도「이 양반들은 일년도 일생도 할란지라」해서 늘 하루 저녁씩 자고 오는데 그래서 보면 이 양반은 그 때나 그 다음이나 꼭 한마음이셨다. 우리 보화당으로 인해서 일곱 군데 보화당이 생겼는데 이 양반 밑에서 예산(禮山)이 훈련해 낸 인재가 다 가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고 교무들 데리고 일해 보면 모 교무는 지방가서 일년 살더니 제 임원만 안 준다고 자꾸 왔다갔다 하더라.
임원 않주면 금방 좋았다가도 얼굴 삐쳐 가지고 도망가 버린다 내가 겪어 보면 다 아는데 이 양반은 인재로 인해서 고통하고 걱정해 본 일 없다.
여섯 군데 살림을 조각 내는데 해봅시다 하지, 당신이 먼저 그 사람 못 데려 간다는 일 없다. 그렇게 못하는 일이다. 덕산 법사에게 말씀해서 지방 창립하는데 몇만원씩 거두어라 하여 가서 늘어 붙으면 다만 얼마씩이라도 주지 딱 떼어 버리신 일 없다. 형제가 많은 부모는 그런다. 살짜기 저놈 모르게 이놈 조금 주고, 이놈 모르게 저놈 조금씩 주어 다 살려낸다. 그것이 이 어른의 표본 이시다. 끊지를 않으신다. 우리뿐 아니라 면민에게도 그러니 어려운 일 있으면 이 양반한테 다 부탁했다.
대종사님께서 이름이 전생 표현이 나타난 것이라 하셨는데 덕산 이름 그대로 잘 사셨다. 그 성격 쓰신 것이 참으로 덕스러우셨다.「양산! 자네는 솔직하니 잘 말하지?」양산 법사도 남 쏘아대는 일 못 보았다.
총부부장 할 때 말이다. 「예」하다가도 자울러 버리지 그러고는 사방에서 찔러대면「아, 나 못들었네」하고 말지. 탁탁 끊고 찍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간부들은 이 회상이 내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다 감싸 주어야 한다고. 누구를 믿고 살겠는가. 다 우리를 믿고 와서 사니 힘 닿는 대로 다 챙겨 주고 , 싸주고하여 저쪽 잘못할 때에 내가 용서해 주고 감싸주어야 한다.
내가 용서할 기회가 왔다. 이래야 된다. 공부할 때를 당했다 해서 싸주고 용서하면 그것이 덕이 된다.
저 쪽 잘못 했을 때 좋은 기회가 왔다. 이 때다 해서 사방으로 꽉 눌러 버리는 건 범상한 사람들 짓이다. 덕산 법사님이 덕스럽게 지내신 일이 교단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표본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내생에는 내가 게송한 바와 같이 다 누구든지 오면 정녕이 가는 것, 가면 정녕이 오는 것, 주면 반드시 받는 것, 받으면 반드시 주는 것,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복을 많이 짓고 덕을 많이 쌓은 양반이라 막힘 없이 공부 사업 잘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