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8부 열반법문

중산 정광훈 정사(中山丁光薰正師) 영전에

중산 정광훈 정사(中山丁光薰正師) 영전에

오호라 중산 은법제(中山恩法弟)여! 우리의 과거 40년 전을 회상하니 은제(恩弟)가 첫 출발할 때에는 부덕(不德)한 나에게 전무출신의 연원을 달았고 그로부터 대종사님의 법을 받들어 교단사를 엮으며 모든 일에 동고동락(同苦同樂)하였으며 특히 서울출장소 근무 당시는 8·15 해방을 맞아 그 후 건국의 초에 교단 만대의 기반을 세우기 위한 정교동심(政敎同心)의 어려운 일들을 은제(恩弟)가 많이 맡아서 일했었으며 6·25 동란 때에는 총부 사수(死守)에 스승님을 모시고 끝까지 그 사명(使命)을 다 하였도다. 또는 선사(先師) 미령중(未寧中)에 계실 때에는 교정의 중요한 일들을 원만하게 운용하여 교단의 체제를 확립하였고 원광중·고등학교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일들은 은제가 맡아 탁월한 슬기로써 안정 발전시켰으며 교단 반백년 사업의 추진이나 서울기념관의 어려운 문제는 이 또한 은제의 뛰어난 정성으로 수습해냈었으나 그로 인한 정력 소모는 마침내 은제의 건강을 잃게 했던 것이로다. 그러므로 우리 자타가 중산 현제의 건강 회복을 교단사로 알고 염원하던 중 근간에는 정양(靜養)의 도(道)와 조섭(調攝)으로 많은 회복이 보이므로 나나 우리 대중이 다 함께 기뻐하고 앞으로는 더욱 교단의 중임(重任)을 책임하고 일해 줄 것을 의논(議論)하고 월여전(月餘前)에는 그 일에 대한 만반 계획이 있어 그 기대가 자못 컸었더니 이 뜻아닌 변이라니 이 웬일인고.
그러나 나는 영천영지영보장생(永天永地永保長生) 만세멸도상독로(萬世滅度常獨露)하는 자리에서 은제를 위하여 한 글로써 영겁(永劫)을 다시 약속하고자 하는 바이로다.
천하 사람들이 속박에서 출생입사(出生入死)하지마는 우리는 세세생생 해탈거래 하기로 서원하고 천하 수도인들이 무애에 끝을 마치지마는 우리는 무애(無碍)한 가운데 은부모형제(恩父母兄弟)에게 줄을 놓지 않는 유애(有碍)의 줄을 놓지 말아서 세세생생 무애무불애(無碍無不碍)해서 여래(如來)로 응현자재(應現自在)하는 자재불(自在佛)을 서원할 것이며, 천하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도리에 밝아서 시비이해(是非利害)에만 분명하지마는 우리는 진리(眞理)의 대소유무(大小有無)에 통달하는 진리의 눈이 밝기를 서원할 것이로다.
출가위(出家位)의 첫 조항에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이치를 알아서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건설하는 것이라 하셨으니 이것으로 복족혜족(福足慧足)의 원천을 뚫는 것임을 알 것이며 또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法界)를 통달하여 전 세계를 선법화(禪法化) 불은화(佛恩化)하는 대종사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일원대도(一圓大道)를 세계 만방에 고루 전하는 대법사도(大法使徒)가 되기를 현제(賢弟)의 영전(靈前)에 비는 바이로다.
유애중(有碍中)에 무애(無碍)하고
무애중(無碍中)에 유애(有碍)하야
무애무불애(無碍無不碍)라사
시즉진무애(是則眞無碍)로다.
-원기 62년 1월 20일-

중산 정광훈 정사 빈소에서
중산이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법문을 자주 하지 않더니, 최후로 뭉쳐서 큰 법문을 한번 하고 갔다. 대종사님 계실 때에 재문 선생이 나와 함께 보화당에서 밤 늦도록 법담(法談)을 나누다가 같이 잤는데 새벽에 깨어 보니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그때 그분의 큰 법문으로 내가 한번 뭉쳐서 큰 공부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중산이 또 큰 법문을 하고 갔으니 우리가 다시 한번 뭉쳐서 공부 사업을 하여야 할 때이다.
며칠전 중산과 신도안에서 만났었는데 중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법열(法悅)과 안정감이 충만해 보였다. 중산은 그동안 항상 바빴다. 무슨 일이나 좀 천천히 해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때에 중산이 나보다 더 찬찬한 태도를 보이었다. 중임(重任)을 맡기로 하는 중산이 그렇게 태연하고 안정된 것을 보고 나는 교단의 경사인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거년부터 우리는 내실(內實), 저력(底力), 세근(細根)의 세 가지 방향으로 교단과 각자의 실력을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나는 중산에게 우리가 그동안 너무 바빴고 교단도 밖으로 너무 드러난 것 같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우리가 일보 후퇴하여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짐으로써 우리 회상을 만세의 반석(盤石) 위에 올려 놓자고 하였다. 그리고 교단의 정사(政事)는 중지(衆智)를 모으고 중의(衆意)를 좇아서 모든 일을 오직 공사로써 처리하되 앞에서 이끌어나가는 것보다 뒤에서 알뜰히 밀어 주어 한 사람의 낙오도 없게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하섬에서 급거 열반 소식이 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천명(天命)인데 중산이 나에게 큰 법문 하나를 남겨 주기 위해서 그 모든 계획을 함께 세웠다고 생각하였다.
중산은 기위 대종사님 밑에서 은자(恩子)의 중한 의를 맺었었고 40년 동안 남음 없는 정성을 이 회상에 바쳤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오고갈 길을 자신이 여일하게 잡았을 것이다. 따라서 중산 개인을 위해서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다. 다만 우리의 교단일에 대해서 우리 각자가 금년부터는 더욱 일보 후퇴하고 더욱 서로 양보하여 교단 만대의 내실을 더욱 착실히 다져 나가기로 단단히 작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은 교도들만의 교단이 아니요 인류만의 교단도 아니요 일체생령의 교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의 진로 여하에 일체생령의 진도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산의 영로를 위해서나 생령들의 전도(前途)를 위해서나 우리 머리에 타는 불을 우리 스스로 끄고 우리 앞길의 밝은 등불을 우리 스스로 밝혀야 한다.
우리의 심신을 과하게 소모하지 말고 평상한 마음과 평상한 행으로 살아나가야 한다. 교단이나 개인이나 차분하고 차서있게 착실하게 모든 일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가 의논하여 세웠던 방향이 결코 헛되지 않고 이것이 교단과 세계의 큰 방향이 되어 중산이 뭉쳐준 최후 법문에 한결 빛을 더하게 하여줄 것이다.
-원기62년 1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