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8부 열반법문

균산(均山) 정자선 정사(丁慈善正師)영전에

균산(均山) 정자선 정사(丁慈善正師)영전에

균산은 이 회상과는 숙겁의 혈연 법연이 지중하여 소년시절부터 일원대도에 귀의하고 출가한 후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이 회상 초창기의 간난한 교단사와 더불어 동고동락하여 왔으며 왜정하(倭政下)의 수난, 8·15해방의 혼란기 6·25동란 등의 그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혈기있는 청년으로서 그에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의연히 본무를 다하였고, 두 차례에 걸친 교무부장 취임 천거에도 끝내 사양하면서 평범한 교역자로 일선 교화에 앞장을 서서 금산, 제원, 대전, 유성 등지의 초창교당을 절약절식, 근검저축으로 차례차례 일으켜 세웠으니 이는 대종사님의 이소성대의 정신을 그대로 몸으로 실천한 전형적 시범이였도다. 교단 4,5백년 결복의 작업에 제1의 과제인 해외 포교에 있어 새 개척자인 포교사로서 남다른 서원을 세우고 미주(美州)에 건너가서는 지하실에서 숙식을 하며, 낮에는 중노동, 밤에는 전법(傳法)을 하며 일인(一人) 삼·사역으로 그 임무 수행에 혈심과 혈성을 다하다 과로로 뜻하지 아나하게 순교를 하니 이에 대중과 함께 비통함이 크도다.
이제 균산 영가로 인하여 해외포교의 전법종자(傳法種子)는 이미 뿌려졌으며 그 공덕으로 앞날의 전법은 더욱 든든히 싹이 트이리로다.
그러므로 균산의 그 거룩한 공덕은 미주에 빛나는 전법의 시창자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영가의 생애가 또한 멸사봉공으로 일관하였으니 그 생애야말로 대중과 이 회상 모든 교역자의 사표가 되리로다.
균산이 최후로 남긴 말과 같이「지금까지도 스승님들과 심심상련하였으나 이후에도 세세생생 이 회상 이 스승님들을 떠나지 아니하고 모시고 다니겠습니다.」한 그 서원은 구원에 사무쳐 헛되지 아니하고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 그리고 삼세제불제성과 파수공행(把手共行)하여 함께 성불제중하리로다.
이제 남은 업력(業力) 모두 청산하고 대안정(大安定)으로 일체를 해탈하되
관공(觀空)=생사(生死)와 거래(去來)가 없는 자리를 비추고,
양공(養公)=일체가 돈망(頓忘)한 그 자리를 양성(養成)하고,
행공(行公)=대무상행(大無相行)을 행하여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가 되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원기60년 2월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