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8부 열반법문

각산(覺山)신도형(辛道亨) 정사(正師) 영전(靈前)에

각산(覺山)신도형(辛道亨) 정사(正師) 영전(靈前)에

1. 발인식 법문
각산 신도형 영가(靈駕)여! 영가는 38세의 짧은 생애(生涯)였으나 참으로 크고 장한 순직(殉職)의 일생 이었도다. 숙세(宿世)의 법연(法緣)으로 이 대도회상(大道會上)을 일찍 알아보고 출가한 후 신성(信誠)은 초지일관(初志一貫) 만난(萬難)을 넘어섰고 사무치는 그 서원은 대종사님과 삼세(三世) 제불제성(諸佛諸聖)님들과 영생을 같이하여 이 회상의 주인이 되었도다.
도형(道亨) 영가(靈駕)여.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이라 하나 교단만대(敎團萬代)의 기초(基礎)를 다듬고 천여래(千如來) 만보살(萬菩薩)이 배출(輩出)되어야 할 이 때에 영가와 같은 법기(法器)가 천만(千萬)이 있어도 오히려 부족하거늘 한창 일할 나이 삼십팔세로 그 큰 뜻을 다 펴지 못하고 홀연(忽然)히 떠나니 이에 어찌 슬픔과 섭섭함이 크지 아니 하리오. 그러나 영가는 동서남북 어느곳에서나 많은 불보살을 배출하기에 진력하였고 위법망구(爲法忘軀), 위공망사(爲公忘私)의 사표(師表)가 되어 그 얼을 이 회상 구석구석에 심어 놓았도다.
이미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모인 도형(道亨)의 색신(色身)은 갔으나 불불계세(佛佛繼世) 성성상전(聖聖相傳) 심심상련(心心相連) 법법상법(法法相法)하든 그 법신(法身)의 도형은 길이 멸(滅)하지 아니 할 것이로다.
도형영가여. 성품(聖品)의 본래(本來)자리에는 생사거래(生死去來)가 없으므로 조만(早晩)이 없는 것이니 오직 본래 크게 세웠던 성불제중(成佛濟衆)의 대서원(大誓願) 아래에 청정일념(淸淨一念)으로 다시 올 것을 간절히 부탁하며 다음 구(句)로써 영겁의 법연을 더욱 두터히 하고자 하는 바이다.
일원대도(一圓大道) 영겁법자(永劫法子)
대사미진(大事未盡) 속왕속래(速往速來)

-원기 58년 3월 4일-
2. 빈소에서의 법문
대종사님께서 영겁(永劫)수도 정진하신 뜻이 생사가 없는 진리(眞理) 인과있는 진리로써 한 근원(根源)을 삼으시고 이 이치(理致)로써 만 생령으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이요. 이 색신(色身)은 거짓이라 가고 옴이 없고 남이 없는 것을 알게 함이라. 영가는 그 진리를 알고 간 사람이고 또 대중이 그 진리로써 축원(祝願)하는 바이니 이 큰 서원이 무량겁을 가더라도 변함이 없이 대종사님이 세우신 큰 뜻 즉 일원주의(一圓主義) 하나의 세계를 만드시려는 그 주의(主義)를 실천하기에 도형은 남보다도 먼저 앞장섰고 또 앞으로 하여야 할 사람이니 그 뜻을 깊이 간직할 것과 또 십여년간에 육영(育英) 사업한 그 정신과 얼이 남아서 앞으로 함마위(降魔位) 출가위(出家位) 여래위(如來位)가 많이 생김으로써 영가(靈駕)는 그 이상의 법위도 오를 수 있을 것이니 일원대도에 영겁(永劫) 법자(法子)가 되어서 만 생령의 부모가 되시는 대종사님의 뒤를 세세(世世)생생(生生) 따르고 또 우리 동지와 함께 이 법을 받들어서 나가야 할 것이니 지금 대사(大事)가 많이 밀려 있은즉 속왕(速往) 속래(速來)하여 큰 뜻 세우기를 동지(同志)와 더불어 진심으로 비는 바이다.
3. 종재식후 유족에게 법문
세상에 돈도 좋고 명예도 좋고 좋은 옷도 좋지마는 그 좋은 가운데에 도를 깨는 것이 제일 좋은 보물을 갖는 사람이다. 예전에 중국에 방거사라는 분이 계셨다. 그 따님인 영조가 열두살에 도(道)을 아버지한테 수학하여 깼다.
그런데 그 때 세상 사람들이 영조가 아버지의 제자라고 생각 했는데 나중에 영조가 간 뒤에 영조가 아버지(방거사)의 스승이라고 돌려졌다.
방거사라 할 것 같으면 인도에는 유마거사, 한국에는 부설거사, 중국에는 방거사로서 재가(在家) 부처님으로 이름난 분이시다.
바로 집에 있는 부처님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영조를 불러 네가 공부를 해서 도(道)를 아느냐 물으니 제가 어찌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하니 아버지가 말하기를 내 하나 물어 볼 테니 네가 대답을 해라.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니라. 방거사가 많은 제자를 데리고 도를 깨서 문답을 보내는데 영조가 아버님 틀렸습니다.다시 정정하십시오 하니 막혀 버렸다.
그 자리에서 힘을 못썼다. 얼마 있다가 더 이상 생각해도 더 밝힐 수가 없어 막혀 가지고 있다가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니, 다시 명명백초두에 명명조사의니라, 거기서 깼다. 그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수백년 후에 영조가 방거사보다 몇 십길 솟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영조가 방거사를 모시고 지낸 것이 아니라 방거사가 영조를 모시고 수학했다는 말씀이 있다.
천심(天心)을 깨고 안 깨고는 아는 사람이 아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십년 전에 이 사람이 장수서 나오면서 내가 송대에 있는데 한 소식이 통해졌더라, 말하고 행동 하는것이 한 소식 통해서 밝아졌구나 하고 생각은 했는데 그 한 소식이 통해져 조금 알기 때문에 방자한 기운을 띠었다. 수자(修者)이요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모멸히 여기는 눈치가 보여서 내가 신도안에 있을 때 하루를 데리고 혼을 내어 내가 마탁을 시킨 일이 있고, 나혼자만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 또한 어제 저녁 무산이 와서 각산이 장수에서 공부를 할때 하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세상은 속일 수 없더라. 또 한정석 교수가 말하기를 각산이 선원에 있을 때 여러 가지 말하던 것이 그 당시에는 시원찮게 들렸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한 소식 얻은 것 같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기 때문에 비장을 내놓는 것인데 말하기 전에 말하면 이 사람에게 해가 돌아간다.
이 사람이 갔고 또 같이 지낸 이들이 몇이 말을 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데 깨달을 각(覺)자가 이 사람에게 명예로 준 호(號)가 아니다. 이 사람이 깬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깨고 갔으면 그만이지, 만년을 살아도 깨지 못하면 그건 애들이고, 하루를 살더라도 깰것 같으면 어른이다. 어제 한두 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참으로 세상은 아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무엇이 바쁘니 무엇이 바쁘니 하고 또 무엇이 귀하니 무엇이 귀하니 해도 도(道)를 깨는 것같이 바쁜 것이 없고 도를 아는 것같이 귀한 것이 없다. 아무리 명예를 가지고 다투고 야단해도 그것 다 꿈이다.
한숨 턱 끊고 들어 누었으면 빈 몸이다. 한 소식을 통해야지! 어떤 스님이 사진만 보고도「아! 이 사람은 한 소식 통했는데」하고 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그런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그러셨다. 천년 후라도 그 사람 말하고 행동한 것 들을 것 같으면 아! 이건 여래다, 이건 출가위 자리다, 이건 무슨 자리다, 하고 다 안다고 하셨다. 그런데 각산(覺山)은 항마 자리가 아닙니다. 여래 자립니다, 하고 여럿이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각산이 살아 있으면 아첨하려는 소리 같으나 지금 그 사람은 갔기 때문에 그것이 참 소리다.
대종사님께서 열반하신 뒤 지금 수십년이 지가고 선 법사님께서 열반하신 뒤 얼마가 지난 뒤 그 어른 도덕이 드러나듯이 참으로 각산이 큰 도인이라면 앞으로 십년, 이십년, 백년 안에 이 사람을 알 사람이 있어서 솟구어 줄 것이다.
지금은 너니, 나니 해서 내릴 사람이 있지마는 백년 안에는 다 가 버리고 없다. 그 때는 다투는 사람은 없고 그 때 행적이라든지 글 짜내놓은 것을 보고 아 이건 한 수 통했다 하고 바로 알아보고 올려 놓는데 그 때는 내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은 내릴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그처럼 살고 가는 것이다.
-원기58년 3월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