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8부 열반법문

생사연마(生死鍊磨)하는 길

생사연마(生死鍊磨)하는 길

매사에 준비가 있어야 경계를 당해서 당황하거나 단촉(短促)한 처사로 일을 그르치지 아니하고 여유있고 완전한 처사로 그 일을 무난히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과 몇 십리 하루 길을 나설 때에도 며칠 전부터 준비를 서두르거늘 이생과 내생을 바꿈질하는 그 길에, 나설 준비를 소홀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生)과 사(死)의 거리가 가깝기로 말하면 백지장 하나의 사이도 없으나 멀기로 말하면 그 거리를 헤아릴 수 없이 머나니 만일 가까운 줄만 알고 먼 줄을 모르면 자칫 잘못하여 밑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될 위험천만한 길이 그 길이며 가시가 있어도 헤쳐가지 못할 가시가 얽혀 있고 철문이 있어도 열 수 없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무서운 길이 그 길인 것입니다. 대종경에도 이르시기를「범상한 사람들은 현세에 사는 것만 큰 일로 알지마는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아나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는 내역과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早晩)이 따로 없지마는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하리라」 하시었으니 이 모두가 생사문제를 크게 깨우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색신(色身)의 생사라 하는 것은 사대오온(四大五蘊)의 이합집산(離合集散)에 불과한 것이요 오히려 실상된 일물(一物)은 장령(長靈)하여 개천개지(盖天盖地)하고 있는 것이니 이 자리는 생멸도 성쇠도 없어서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으나 이러한 진리를 깨치지 못하며 닦고 닦지 아니한 데에 따라서 부처와 중생의 구별이 있게 되어 불보살은 생사의 길을 백주(白晝)에 탄탄대로를 걸어가듯 하나 범부 중생은 가시밭 험한 길을 칠통같이 어두운 밤중에 헤매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생사의 도를 늘 연마하여 미리 실력을 쌓아 두어야 할 것이니 그러기로 하면
첫째, 착심(着心)두는 곳이 없이 걸림없는 마음을 늘 길들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기로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워하는데에 사로잡히거나 탐욕에 사로잡히는 생활을 반복하여 일생을 허덕이다가 끝마치기 쉬운 것이며 이와 같이 묶여서 사는 그 길앞에 부딪치는 파란고해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평소 부터 세욕(世慾)에 묶여 살지 않는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요.
둘째, 생사가 거래(去來)인 줄 알아서 늘 생사를 초월하는 마음을 길들여야 할 것입니다. 백학명스님이 임종시에 이르러 평소에 좋아하던 글을 제자에게 읽도록 하고 들으시며 「좋다 좋다 참 좋다」하면서 홀연히 열반에 드셨다 하니 죽어가는 길에도 이와 같이 태연자약하고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떠나는 것은 생사일여(生死一如)한 이치를 알기 때문이니 평소에 생사 없는 열반의 진경을 깨달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야 할 것이요.
셋째, 마음에 정력(定力)을 쌓아서 자재(自在)하는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먼 길을 나설 때에는 여비가 제일 아쉽듯이 죽음길을 나설 때에 제일 아쉬운 것은 정력이며 정력이 있어야 자유로이 소요하다가 태어나고 싶은 곳에 임의로 태어날 수 있나니 그러므로 평소에 필요없이 사용하는 육근(六根)을 늘 멈추어서 함축(含蓄)하는 공(功)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할 것이요,
넷째, 평소에 큰 원력(願力)을 세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종자가 좋고 완실하여야 그 열매도 완실하고 좋은 것이며 서원(誓願)이 크고 철저하여야 그 공덕 또한 완실한 것이니 평소에 불보살 성현들과 같이 크고 거룩한 서원의 종자를 지닌 분에게 접을 붙여서라도 좋은 서원의 종자를 선택하여 굳게 세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 네 가지를 평소에 늘 연마하여 놓는다면 사는 일은 물론이요 죽어가는 길에도 그렇게 아쉽고 당황하지 않으며 수월스럽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생사를 연마하는 도요, 생사를 해결하는 큰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핵의 발명에까지 이르렀다면 도학문명은 생사를 해결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는 다같이 하루를 통해서 조석만큼은 생사를 연마하는 시간으로 정하여 끊임없는 정성을 들임으로써 생사대해(生死大海)를 무난히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