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1부 교리(敎理)

원만평등한 세계건설[四恩四要]

원만평등한 세계건설[四恩四要]

우리 대종사님께서 병진(丙辰) 3월(月)26일에 대각(大覺)을 이루신 후 앞으로의 세상을 보시고 장차 수륙공(水陸空)에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법을 짜 놓으셨으니, 이 법이 앞으로 세상에 맞아 갈 것이며, 우리 정전(正典)에는 새 세상을 살아 갈 길을 밝혀 주시고 모든 법을 밝혀 놓으셨다. 그런데 과거 성현들이 법을 내놓으셨는데 어찌하여 대종사님께서 새삼스러이 새로 법을 내셨는가. 그것은 과거 성현(聖賢)들이 법을 내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셨으나, 이미 그 과거 시대는 가고 새로운 천지가 열렸으니, 이 현세(現世)로 부터 미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새 세상의 첫 단계에 새 법을 마련하여 놓으신 것이다.대종사께서 대각을 이루신 후 처음 세상을 관찰하시고 천지는 개벽기(開闢期)가 도래(到來)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천지개벽(天地開闢)」이란 과연 무엇을 이름인가.
내가 어렸을 때 에는 노인들이 천지 개벽이란 말은 하셨는데, 그들은 천지 개벽을 해석(解釋)하되, 하늘과 땅이 맞닿아서 맷돌처럼 갈아 가지고 그 중에서 죄진 자는 죽고 복진 자는 산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느 마을 집에서는 노인이 천지 개벽한다는 말을 듣고 울을 뚫고 도망질치려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나, 이것은 당치않은 어리석은 소견이며, 또 고어(古語)에 천지 현격(天地縣隔)이라 하늘과 땅이 멀리 있다고 하나, 그런 것도 아니다. 천지 개벽이란 하늘과 땅이 열린다는 것으로 하늘이 열린다 함은 정신 개벽(精神開闢)을 이름이며 땅이 열린다 함은 물질(物質)의 개벽을 이름이다. 저 서양(西洋)에서는 땅이 열림에 물질문명(物質文明) 과학문명(科學文明)이 발달(發達) 되어서 호롱에 불을 켜다가 밝은 전등(電燈)을 사용(使用)하며, 새가 아니면 날지 못할 공중을 임의(任意)로 날며, 그밖에도 의·식·주가 한(限)없이 편리하게 발달되어 육신(肉身)의 낙원(樂園)이 건설되었고, 동양(東洋)에서는 하늘이 열림에 정신문명, 도덕문명(道德文明)이 발달되어서 인인(人人) 개개(個個)가 일원(一圓)의 깃발 아래 안으로는 삼학팔조(三學八條)를 수행(修行)하고, 밖으로는 사은사요(四恩四要)를 실행(實行)하여 정신의 낙원이 건설되는데 서양에 건설되는 육신의 낙원이란 일생에 속한 것으로 객(客)이 되는 것이며, 동양에 건설되는 정신의 낙원은 영원한 것으로서 주(主)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천지의 개벽이란 서양으로부터 땅이 열려오고, 동양으로 부터 하늘이 열려가서 동서와 주객이 함께 열린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지금 변혁기(變革期)가 왔다고 하며, 이 시대가 말세(末世)라고 하는데 말세라고 하면 바로 비롯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때가 비롯이냐?
대종사님께서는 선후 천(先後天)의 측량기점(測量基點)을 지난 갑자년(甲子年·1924) 정월초일일(正月初一日)에 두시고, 또 수운선생(水雲先生) 께서도 갑자년으로 잡으셨으니, 이 때가 천지개벽의 비롯이며, 갑자 이전은 선천(先天)이요, 음시대(陰時代)며, 갑자 이후는 후천(後天)이요, 양시대(陽時代)이다. 과거 음시대에 있어서는 신계(神界)에서 인계(人界)를 지배하였으나, 오는 양시대에는 이와 반대로 인계에서 신계를 지배한다. 이에 따라서 과거의 모든 법은 들어가고 새 법이 나와야 한다. 낮이면 낮의 법이 있고, 밤이면 밤의 법이 있듯이 과거에는 과거의 법이 있었고 현세에는 현세(現世)에 알맞는 법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백년만 지나면 과거의 모든 윤리(倫理)·도덕(道德)·철학(哲學)이 거의 들어가게 될 것이며, 다시 음(陰)시대가 온다면 모르거니와, 과거의 도덕은 그대로 쓰기 어려울 것이요, 이것을 쓰려면 반드시 새로운 법주(法主)가 한번 주물려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종교도 역시 새 세상에 맞는 새 종교라야 한다.
과거의 개체불숭배(個體佛崇排拜)의 시대는 지나가고 전체불(全體佛) 숭배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차별(差別) 시대는 지나고, 평등시대가 왔다. 그러므로 대종사님께서는 일체법(一切法)을 제정(制定)하실 때에 원만평등(圓滿平等)하게 하셨으니, 이를 간단히 말하면 일원(一圓)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천지를 믿는 데에도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사상이 있어서 하늘만 믿어왔으나, 대종사님께서는 천지를 동일하게 믿게 하셨으며, 또 과거에는 부모를 공경(恭敬)하는 데에도 아버지를 더욱 공경하였으나 앞으로는 부모를 같이 공경하게 하셨으며, 동포도 과거에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폐풍(弊風)이 있어서 사농공상 네 가지 직업 강령 중에서 사(士)만 우대하고 농공상은 천대를 하였으나 앞으로는 사농공상을 다같이 대우하게 하였으며, 법률(法律)도 과거에는 집권자(執權者)만 받들고 행정자(行政者)는 아전(衙前)이라 해서 가치없이 여겼으나 앞으로는 입법(立法) 치법자(治法者)를 같이 존대(尊待)하게 하셨다. 그리고 신앙(信仰)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나무나 돌, 또는 물 등 한가지만 믿어왔으나 대종사님께서는 우주(宇宙)·만유(萬有)·삼라만상(森羅萬象)·전체(全體)를 믿으라 하셨으며, 도가(道家)에서 법을 배우는 데에도 어느 한 법사(法師)만 믿고 배울 것이 아니라 법이 높으신 스승은 다같이 신앙하고 배우라, 내가 법을 전하는데 너희들이 받지 못하면 모르거니와, 내가 줄 때에는 다 같이 준다고 하셨다. 과거에는 인권차별(人權差別)·반상차별(班常差別)·남여(男女) 차별 등이 있었으나 대종사님께서는 인권평등(人權平等)·지식평등(知識平等)·교육평등(敎育平等)·생활평등(生活平等), 이와 같이 평등의 법을 내 놓으셨으니, 우리가 대종사님 법을 쉽게 받으려면 첫째 원만평등(圓滿平等)해야 할 것이며, 또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법을 후인에게 전할 때 내가 시키는 공부와 사업을 열심히 하는 자에게 전하리라 하셨으니 우리는 이 공부 이 사업을 잘 해야 될 것이다.
이 세상은 모든 기운이 어디에서 내려오느냐 과거에는 위에서 내려왔으나 지금은 땅에서 올라온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강한 자가 먼저 기운을 받았으나, 지금은 땅에서 기운이 올라오므로 약한 자가 먼저 기운을 받게 되니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약소국가(弱小國家)이지만 앞으로는 한국이 제일 먼저 기운을 받아 세계 제일 국가가 될 것이다.그렇다면 대체 얼마만에 새로운 세계가 돌아오게 되는냐. 주역(周易)에는 오만년(五萬年)만에 선후천이 바뀐다 하였고, 수운선생(水雲先生])은 일천사백 사십만년만에 돌아온다 하였으며 대종사님께서는 고경(古經)을 인거하여 말씀하시기를, 세계가 한번 바뀌고 제도수에 돌아오려면 일대겁(一大劫)이 지나야 하는데, 이 일대겁 중에는 성주괴공(城住壞空)이 완전히 한번 순환(循還)한다고 하셨다. 그러면 여기에 말한 겁(劫)이란 무엇인가. 겁이란 백년만에 한 살씩 더해서 팔만사천 세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백년만에 한 살씩 감(減)해 십세에 이르는 수를 일소겁(一小劫)이라 하나니, 이 일소겁의 이십배가 일중겁(一中劫)이요 일중겁의 네배가 일대겁(一大劫)이나, 팔십소겁이 지나서 새로운 세계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大劫­十二億七千九百八十四萬年. 中劫­三億一千九百九十六萬年. 小劫­千五百九十九萬八千年). 그런데 이 일대겁의 첫 단계에 우리가 낳게 된 것이 얼마나 희귀(稀貴)한 일인가. 내가 연전에 서울에 있을 때 생각해 보니 다행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 그것은 첫째 전 만고(前萬古) 후 만고(後萬古)에 뵈옵기 어려운 유아(唯我) 대종사님의 제자된 것이요, 둘째 나의 몸과 마음을 일개 가정이나 사회에 바치지 않고 널리 시방삼세(十方三世) 육도사생(六途四生)에게 바친 것이며, 셋째 다른 나라에 낳지 않고 우리 한국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선천에는 개인주의(個人主義)·가정주의·국가주의에 한했으나, 현재와 미래에는 세계대아주의(世界大我主義)로 옮아가게 되었으니, 그러므로 과거에는 한 임금만 받드는 것을 충신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육도사생(六途四生)을 다 받드는 것이 충(忠)이라 하였고 한생 부모만 받드는 것을 효라 하였으나, 이제는 삼세(三世) 부모에게 바친 것이 참으로 효가될 것이며, 열(烈)도 과거에는 불경이부(不更二夫)만을 하였으나, 지금은 굳굳이 진리를 지키는 열(烈)이라야 참으로 옳은 열이다. 이와 같이 과거의 낡은 윤리를 현재와 미래의 일체평등의 새로운 윤리로 제정하셨으니, 이가 과거 석가세존께서 입적(入寂)하실 때 금란가사(金蘭袈裟)를 아란(阿難)에게 주시며, 이것을 계속 산하에 묻었다가 미륵불(彌勒佛)이 나면 전하라 하신 그 미륵불 세계가 바로 이 세상이다. 미륵불 시대는 등상불(等像佛)에 대신(代身)하여 법신불(法身佛)이 나타나니 이 법신불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므로 미륵불시대는 또한 원만 평등한 것이다. 대범 이 세상을 잘 살려면 진리 생활을 하여야 하며 낙생활을 하여야 하는데 그 낙생활을 하는 법이란 모든 것을 원수로 보지 말고 은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다면 단생(單生)뿐만 아니라, 영생을 두고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어려운 것은 여태까지 원수로 보던 것을 어떻게 금방 은혜로 볼 것인가? 과연 그렇다. 성경에는「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가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면 그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하였지만 여태까지 원수로 보던 것을 은혜로 돌리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원수라도 은혜로 돌리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첫째 사은이 다 나의 일가친척임을 알고 새 윤기를 맺어서 새로운 살림을 하는 것이다. 가령 여기에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옛날 어느 곳에서 형제가 조실(早失) 부모를 하고 집을 나서 멀리 헤어졌는데 묘하게 한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작별한 지가 오래인지라 형제인 줄도 모르고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더니 하루는 극하여 죽도록 싸우고 나서 한 사람이 묻기를「도대체 당신 고향은 어디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소」하니, 「나의 고향은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인데 조실부모를 하고 이렇게 왔소」 이 말을 듣던 사람이 「나도 역시 그렇소」하고 자세히 알고 보니 수십년 전에 서로 눈물을 머금고 헤어진 형제였더라, 그러하니 여태껏 싸운 것을 속아프게 뉘우치고, 이 때로부터 새로운 윤기(倫氣)를 맺고 화목하게 살았다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개인과 개인끼리 싸우고 사회와 사회끼리 반목하고 국가간에 전쟁하는 것도 다 우주의 한 동포형제인 줄을 모르는 연고라 마치 철모르는 아이가 저희 집 살림을 때려 부순 격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속히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 성품(性稟) 자리를 보아 우리의 일가(一家)를 찾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이 없어서는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새로운 윤기를 건낼 것이며, 이리하여 원수를 은혜로 돌려 감사생활을 하면 사방이 툭 터져서 한 없이 넓고, 만일 원망생활을 하면 이 세상이 바늘 꽂을 데가 없이 좁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제일 크고 행복된 이는 은혜를 발견하여 평탄한 생활을 하는 자이다. 이러한 견지(見地)에서 배도(裵度)라는 정승도 불빈불부안과일세(不貧不富安過一世)라 하지 않았던가. 다음은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불행한 소인은 누구인가 하면, 원수를 발견하여 원망생활을 하는 자이다. 사람이 네 가지 큰 은혜를 알아, 이 은혜를 갚으면 생문(生門)이 열리고 복전(福田)에서 복이나오며, 사은에 배은하면 사문(死門)이 열리고, 죄전(罪田)에서 죄가 나온다.「당신 농사를 얼마나 지었소」할 적에 우리는 전답의 농사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가 복을 심은 복전(福田)이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원망생활의 결과로 나타난 죄전(罪田)은 줄이고 없앨 것이며, 아무쪼록 감사생활로써 이 복전을 늘이기로 하자.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의 복전이시었다. 복인(福人)이란 어떠한 사람이며 죄인이란 어떠한 사람인 줄 아는가. 복인이란 원수라도 은혜로 돌려 낙생활(樂生活)을 하는 사람이며 죄인이란 은혜라도 원수로 돌려 고생활(苦生活)을 하는 사람이다. 원수라도 은혜로 돌려 은혜를 발견할수록 천지의 상서(祥瑞) 기운이 내게로 오고 은혜라도 원수로 돌려 원수를 발견할수록 천지의 악기(惡氣)와 독기(毒氣)와 살기(殺氣)등 모든 나쁜 기운이 내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이생 뿐 아니라 영생을 두고도 그러한 것이다.
경상도에 백년재라는 재가 있는데, 때마침 혹한절(酷寒節)이라 눈이 길로 쌓였었다 한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소금 짐을 지고 가다가 기운이 다하고 맥(脈)이 풀려서 더 갈 수 없어서 떨고 앉았노라니, 마침 어느 솜장사가 지나가므로 이 사람은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구원(救援)을 청(請)했으나 솜장사는 무정하게 돌아다 보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뒤 조금 후에 또 소금장사가 오므로 이제 간곡히 구원을 청했더니, 그 소금장사는 생각하기를, 이 소금짐이나 저 사람이나 무게는 같을 것이나 이 짐을 놓고 사람을 살리자 하고 그 사람을 부축해 업고 그 재를 올라 갔었다. 가는 동안 그 업힌 사람은 그 사람 온기에 기운을 타고 겨우 살아났는데 불행히도 이제는 그 업고 간 사람이 기운이 지쳤는지 재를 다 올라 가서는 기운을 잃고 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태까지 업혀 온 사람이 온갖 힘을 다하여 자기의 목숨 구원한 사람을 업고 내려갔었다. 그런데 얼마만큼 가다 보니 먼저 혼자만 살겠다고 뿌리치고 간 솜장사는 추위에 못 견디어 얼어 죽었다고 하니, 이런 것을 볼 때에도 우리는 원망생활을 말고 감사생활을 하여야 한다. 나도 죽겠는데 살려 달라고 청한 것이 싫어서 뿌리치고 간 사람보다 그 역경 난경을 도피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자기의 짐을 던지고 그 사람을 업고 가서 서로 사는 바 되었으니 이 얼마나 장한 마음이냐.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해치려는 것을 원수로 볼 것이 아니라, 저희가 나에게 공부시켜줄 기회를 준 것이다. 또는 나의 길을 열어 준 사람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비록 원수일지라도 그를 은혜로 보아야 한다.
이 몸은 사은의 빚이니 내가 선(善)을 행하고도 복(福)을 지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생(前生) 차생(此生)에 많이 얻어다 쓴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라. 복을 짓고 이것을 복이라 생각할 때 저편에서 그 은혜를 몰라주면 거기에서 원망이 나오는 것이니 우리는 조금이라도 복을 짓는다는 생각을 떼어버리고, 오롯이 빚을 갚는다 하고 모든 선을 닦아나갈 것이다. 사은이 다 부처님이시니 내가 성불(成佛)을 하려면 이 모든 부처님께 공(功)을 드려야 한다. 세상에 조그만한 벼슬을 하려고 해도 가지 가지의 공이 다 드는데 항차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장악할 대자대비한 부처님이 되려할 때, 어찌 큰 공이 들지 아니할 것인가,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이 있거니와, 우리도 성불하는데 독공(篤功)을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첫째 사은이 일가(一家)인 줄을 알아서 새로운 윤기(倫氣)를 맺고, 둘째 사은의 빚을 알아 갚으며, 세째 성불을 하기로 사은 부처님께 공을 드린다면 모든 원수가 다 은혜로 돌아와서 안락(安樂)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잘 살려면 먼저 이 세상이 좋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전염병이 만연되어 있는데 나 혼자만 그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이 세상을 좋게 하려면 어찌 하여야 할 것인가. 인격평등(人格平等)·지식평등(知識平等)·생활평등(生活平等)의 원만평등(圓滿平等)한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첫째, 인격평등이 되려면 자력양성(自力養性)을 하여야 한다. 인격의 차별(差別) 원인(原因)은 부족(不足)함이 있음으로써이니, 나의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하루를 지내고 오늘은 자력으로 살았는가, 타력(他力)으로 살았는가를 반성해 보자. 자력이란 인격이다, 자력은 권리(權利)이다. 자력이 있어야 건설(建設)하고, 행복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며, 자력생활을 하여야만이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니하고 남에게 미루면 그 힘과 복력(福力)이 그쪽으로 가므로 복도 또한 나에게 오지 않고 그쪽으로 간다. 그러기 때문에 도인(道人)과 위인(偉人)과 문명인(文明人)은 자력을 높이 알며, 자력생활을 하고, 미개(未開)한 야만인(野蠻人)은 타력을 의지하여 의뢰생활(依賴生活)을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민족이 다같이 자력만 갖는다면, 우리나라는 바로 평화가 될 것이며 나아가서 세상 사람이 다 자력만 길러 갖는다면 세계의 인류는 평등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력을 세워 자력생활을 하자, 그래야 우리 대종사님의 법에 위배(違背)됨이 없으며, 세상을 파괴(破壞)하고 좀먹는 자가 되지 않고 세계에 도움을 주는 건설자가 될 것이다.
둘째, 지식평등이 되려면 지자본위(知者本位)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식평등을 하기 위하여는 다른 차별은 없애더라도 이 지식평등은 엄연(嚴然)히 두어야 한다. 과거 이조시대에는 양반(兩班)이면 가령 우자(愚者)라도 등용(登用)되었고 또 합방 후(合邦後)로는 돈이면 다 출세(出世)를 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아는 자가 주(主)가 될 것이며, 언제든지 우자(愚者)는 천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이 어리석은 자가 배우려 들며 앞으로의 세상은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루를 지내고 오늘은 얼마나 배웠는가, 글은 얼마나 배웠으며, 진리는 얼마나 배웠는가, 매일 조사하여 죽는 날까지 이 배움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 모세라는 화가는 60세까지 부자집 식모 노릇을 하다가, 하루는 부엌 앞에서 부지갱이를 들고, 그림을 그려 보니 될 것 같아서 그때까지 벌어 놓은 임금을 한꺼번에 받아가지고 학교로 가서 그림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데 밭에서 일하는 것이나 또는 헌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늘상 그리었다. 그리하여 이는 결국 위대(偉大)한 화가가 되고 말았으니, 우리도 일심(一心)으로 배워나가면 반드시 득력(得力)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은 우리의 눈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앞으로 무한(無限)한 세상을 보시었다. 고어(古語)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늙은이, 젊은이를 막론하고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부끄럼이 아니니, 모르는 것을 물어서 알아야 한다.
지식은 만사를 이뤄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수족(手足)이 되며, 등불이 된다. 우리가 이 등불을 가져야만 죽는 데에도 전도(轉倒)되지 아니하고, 앞길을 밝히고, 바로나아갈 수 있으니, 이 등불은 영생을 두고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또 이 지식은 인류의 희망이니, 밝고 참된 지식으로 대종사님께서는 일체중생의 희망이 되시었다. 한 때의 묻는 것은 일시의 수치(羞恥)이나 영원의 행복이 되는 것이며, 한 때의 묻지 않는 것은 일시의 수치는 면한다 하더라도 영원의 불행이 되는 것이니, 간절(懇切)히 물어 배워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현재 생활로는 서양이 높고 도덕으로는 동양이 높은데, 앞으로 이것이 골라 맞아야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호화찬란한 서양의 문명이 물밀듯이 밀려옴에 그의 장단(長短)을 가라지 않고 무조건 다 모방하려 하나, 취(取)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셋째, 교육평등(敎育平等)이 되려면 타자녀 교육(他子女敎育)을 하여야 한다. 모르는 것을 배울 줄도 알아야 하거니와 또한 배워서 알면 그것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주고 살았는가 가르치지 않고 살았는가를 반성(反省)해 볼 것이다.
도인(道人)은 자기의 도를 전하지 못하고 갈 때에 애통함이 부모가 자식을 잃은 것과 같은 것이다. 과거에는 불법을 가르치려 하나 모든 사람이 불법(佛法)을 싫어하므로 가르칠 도리가 없었으나, 오늘에 와서는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이 적고, 차차 불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가니 질적(質的)으로든지 양적(量的)으로든지 아는 대로 가르쳐 불법을 보급시키자. 자기만 알고 가르칠 줄 모르는 자는 금수와 같은 야만인일 뿐 아니라, 사회적 죄인이며, 큰 빚장이라, 돈 벌어가지고 혼자만 쓰다가 죽는 사람이나, 자기만 배우고 가르치지 않고 간 사람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님께서는 학불염(學不厭)·교불권(敎不倦)이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않으셨다.
넷째, 생활평등이 되려면 공도자(公道者)를 숭배(崇拜)하고 저마다 이 세계를 위하여 일하는 일군이 되어야 한다. 오늘은 내가 사회에 이익을 주었는가 사회에 좀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대종사님께서, 먹고 일하지 않했으면 그 사람은 고혈마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여 사회에 유익을 주는 공도자가 될지언정 이 사회에 좀이 되는 고혈마가 되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법을 실행하는데 우리가 인인(人人) 개개(個個)는 내가 먼저 실행하고 다음에 가정에서 실행하고, 또 우리 국가에서 실행하여야 자연 세계에 드러나게 될 것이니 각자가 이를 철저히 실행하고 돈독히 수행(修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