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문집 제2집(大山宗師法門集 第2輯)

제1부 교리(敎理)

삼학공부(三學工夫)

삼학공부(三學工夫)

대종사(大宗師)께서 일원(一圓)의 진리를 최고 종지(最高宗旨)로 세우시고 그 아래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수행문(修行門)으로서 공부(工夫)의 요도(要道) 삼학 팔조(三學八條)와 인과 보응(因果報應)의 신앙문(信仰門)으로서 인생(人生)의 요도(要道) 사은 사요(四恩四要)를 제정하시어 제생의세(濟生醫世)의 정로(正路)를 밝히시었느니, 과연 삼학 팔조의 공부(工夫) 길이 아니면 전 인류를 다 구제(救濟)해 낼 수 없고 사은 사요(四恩四要)의 실천(實踐)이 아니면 넓은 세상을 고루 평등(平等)하게 골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 대종사님과 정산종법사(鼎山宗法師)님의 가르치심과 고성(古聖)님들의 법문(法門)을 받들어 나의 평소(平素)에 생각해 보고 체험(體驗)해 본 가운데 공부하고자 하는 바와 실천(實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적어 놓았으니 수도(修道)하시는 제현(諸賢)께서는 이로써 자신의 수행(修行)과 아울러 전 인류를 구제(救濟)해 내고 나아가 지상(地上)의 낙원(樂園)을 건설하는 동시에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하는 데 일조(一助)가 되시기를 비는 바이다.

1. 삼학공부(三學工夫)의 강령(綱領)
삼학은 곧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의 세가지 공부할 길이니 삼학 공부의 강령을 들어 말하면 온전(=修養)한 생각(=硏究)으로 취사(取捨)를 잘 하자는 공부법인바, 이 공부 법은 일체 생령(一切生靈)이 다 밟아나갈 천하의 대도(大道)인 것이다.

2.삼학공부(三學工夫)의 대요(大要)
「정신수양(精神修養)」은 마음을 닦아 맑히자는 것인데 흩어진 정신을 모아 자주력(自主力)을 얻자는 것이며, 번뇌(煩惱)에 타는 심화(心火)를 끄자는 것이며, 욕심(慾心)에 도둑 맞은 진성(眞性)을 찾아 내자는 것이다.
「사리연구」는 마음을 찾아 밝히자는 것인데 모든 진리를 갈고 궁굴려 깨치자는 것이며, 모르는 진리를 배워 알자는 것이며, 밝혀 놓은 진혜(眞慧)를 계속해서 어둡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작업취사」는 마음을 바르게 잘 쓰자는 것 인데 모든 악업(惡業)을 끊고 뭇 선(善)을 행 하자는 것이며, 없는 복을 새로 짓자는 것이며, 지은복을 계속해서 있게 하자는 것이다.

3.정신수양 공부의 길
정신수양 공부는 ①마음을 닦고 키우는 공부, ②일심(一心)을 모으는 공부, ③기도(祈禱)하는 공부, ④마음을 길들이는 공부, ⑤마음을 지키는 공부, ⑥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공부, ⑦생각을 텅 비어 버리는 공부, ⑧착심(着心)을 떼는 공부, ⑨부동심(不動心)을 양성하는 공부 ⑩보림(保任)하는 공부인바 안으로 마음을 닦는 데 있어서는 심고(心告), 기도(祈禱), 주송(呪誦), 염불(念佛), 좌선(坐禪),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및 연구(硏究)와 취사(取捨)가 있어야 할 것이다.

1) 마음을 닦고 키우는 공부
첫째, 성불(成佛)을 하려면 큰 믿음 아래 적은 욕심을 버리고 큰 욕심인 대서원(大誓願)을 품고 공부해 나가야 될 것이다.
둘째, 우리의 마음을 성품의 본연 청정한 근본 자리에 자주 반조(返照)시켜서 삼독심(三毒心)을 뿌리까지 뽑아 버릴 것이며,
셋째,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늘 모시고 사모하며 청정무애(淸淨無碍)하시고 대자대비하신 그 마음 자리에 자주 비추어서 때묻고 더러운 중생심을 제거해 버릴 것이며,
넷쩨, 제불 제성의 무량 법문을 많이 애송하고 또는 절욕(節慾), 금욕(禁慾)하신 인욕행(忍慾行)을 본받아 무시로 일어나는 번뇌와 육진(六塵)에 물든 마음을 자주 챙기고 닦아서 맑히기를 공부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가구감(禪家龜鑑)에『다만 범정을 없앨 따름이요, 따로 성해를 구하지 말라(但盡凡情 別無聖解)』고 하신 것이다.

2) 일심을 모으는 공부
이는 동정(動靜) 두 사이에 시간과 처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일심을 모으는 공부이니 동할 때에는 그 일 그 일에 일심 모으기를 힘 쓸 것이요. 정할 때에는 천지만엽(千枝萬葉)으로 흩어진 정신을 오로지 일념(一念)으로 통일 시키기를 공부할 지니 곧 일념현전(一念現前) 일상삼매(一相三昧) 타성일편(打成一片) 일심불란(一心不亂) 주일무적(主一無適)등은 모두 일심(一心)을 모으는 공부법인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일하는 가운에 일심을 모으는 공부가 참 공부가 되므로 사상선(事上禪)이 진활선(眞活禪)이라고 하는 것이다.

3) 기도(祈禱)하는 공부
일상 생활을 기도의 신념으로 일관하되 특별한 서원을 세우고 올리는 기도는 일천 정성(一千精誠)을 다하여 일백 골절(一百骨節)에 힘이 들어야 할 것이니 수도인은 매월 매년 심고 또는 기도 시간을 三일 千일 十년 내지 일생(一生)을 세세 생생(世世生生) 정해 놓고 이에 정성을 계속해서 큰 위력(威力)을 얻도록 할 것이다.
□예(例) = 매월 三회 기도일
○「매월 초 1일」 - 수도 정진 기도일(修道精進祈禱日) - 교당에 참예하여 행한다. 오늘부터 수도에 일심(一心) 정진하여 불도를 원만히 성취해서 영겁(永劫)에 생사 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고 나아가 육도중생(六道衆生)을 기필코 건져 주기로 끊임없이 정진 하기를 서원 할 것이다.
○「매월 15일」- 보은감사기도일(報恩感謝祈禱日) - 교당에 참예하여 행한다.오늘로써 개개인이 사은(四恩)의 지중(至重)하신 은혜를 발견하여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전세계인류로 하여금 평화(平和)의 낙원(樂園)을 건설(建設)하게 하여 서로 서로 웃음 속에서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우선 나부터 보은 감사 생활(報恩感謝生活)을 실행 하기로 서원 할 것이다.
○「매월 회일(晦日)」- 참회 개과 기도일(懺悔改過祈禱日) - 가정에서 조석심고 시간에 행하여도 무방하다.오늘까지 신?구?의 삼업(身口意三業)으로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그 무서운 모든 죄업(罪業)을 낱낱이 찾아내어 깨끗이 참회 개과해 버리고 앞으로는 다시 짓지 아니하여 영겁에 삼업(三業)이 청정해지도록 마음 고삐를 돌려서 새 마음 새생활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주의(注意)‥기도(祈禱)할 때에 특히 주의(注意)해야 할 점은 생명(生命)을 살해(殺害)하는 일과, 원심(怨心)을 품는 일과, 배은망덕하는 일은 아니 할 것이며, 또는 장기(長期)로 올리는 기도 시간(時間)은 십분 내지 삼십분이면 족할 것이요, 기도 중 건강에 이상(異常)이 생기면 바로 중지 하였다가 뒤에 서서히 올릴 것이다.

4) 마음을 길들이는 공부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어야 자라고, 마음이 어린 사람은 스승의 법유(法乳)를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오도(悟道) 하실 때에 서말 여섯 되의 법유를 자셨다 하였으니, 곧 삼학과 육바라밀(六바羅密)의 법유를 자셨다는 말이다. 이 마음 길들이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아이 길들일 때, 한 때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먹이는 일과, 재우는 일과, 놀리는 일을 법도에 맞게하여, 일,이십 년 기르고 나면 자연장성(自然長成)하여 어른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선(禪)할 때와, 생각 할 때와, 취사 할 때를 법도(法度)에 맞게 오랜 시일을 길들여야 육도사생(六途四生)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실한 마음이 되는 것이니, 수도장을 목우실(牧牛室)이라 하고, 수도인을 목부(牧夫)라 이른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5) 마음을 지키는 공부
본래 불가에서 화두(話頭)를 들라는 것은 소를 말뚝에 매어 두듯이 우리의 마음을 화두에 매어 두자는 것이며, 또는 제불 제성(諸佛諸聖)이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육근문(六根門)을 잘 지키라 하셨고, 그 외에 달마 관심론(達磨觀心論)에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 한다(觀心一法總攝諸行)한 것이나, 선가구감(禪家龜鑑)에 「그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 가는 정진(守其心第一精進)」이라 한 것이나, 맹자에 「밤 기운을 함양(存夜氣)」하라 한 것이나, 수심결에「불(佛)이 보통 사람보다 다른 것은 그 심년(心念) 을 잘두호하심이라」 한 것이나, 정전 단전주법(丹田注法)에 「마음을 주하라」 하신 것이 한 말로 말하자면, 마음을 잘 지키는 공부법인 것이다.

6)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공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 가운데 처음에 경계를 피해서 하는 공부길도 있고, 경계 가운데 경계와 싸워가며 하는 공부법도 있으나, 처음이라고 너무 경계를 피하기만 해도 도리어 지장이 있을 수 있고, 또는 경계 가운데 너무 시달려도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자주 마음의 동태를 속임없이 윗 스승에게 고백하여 한 곳에 착(着)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만일 정공부(靜工夫)를 오래하는데 생생한 지혜가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길을 잘못 든 공부로 알아야 할 것이니, 그런고로 고요한 즉 도가 생한다(靜則道生)하였고, 또는 천하를 크게 움직이고자 하는 자는 먼저 마땅히 천하에 제일가는 고요한 공부를 하라 하였고, 이외에 정려(靜慮), 적광(寂光), 주정(主靜) 등은 다 마음을 먼저 고요하게 하라는 공부법인 것이다.

7) 생각을 텅 비어 버리는 공부
첫째, 매일 정해놓고 밤중이나 취침시에 일체 생각을 다 비어 버리는 공부를 일삼되 대중잡는 마음만은 면면(綿綿)하게 놓지 말기를 길 들일 것이며,
둘째, 오래 성숙(成熟)되는 대로 그 대중 잡았던 마음까지 서서히 놓아 버리기를 길 들일 것이며,
셋째, 구경에 들어가서는 놓았다는 마음까지 놓고 허공 법계(虛空法界)와 합일하는 것이 참으로 생각을 비어 버리는 공부이니 크게 생각을 쉬어라(大休大歇), 빈 집에 광명이난다(虛室生白), 나와 경계가 다 비었다(物我俱空), 공을 관하라(觀空)하는 말씀 들이 모두 생각을 비어 버리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8) 착심(着心)을 떼는 공부
일상 생활을 해 나갈 때 음식이나 의복이나 거처나 수용품에 대해서 분수에 넘치지 말고 항상 담박을 주로 할 것이며, 또는 일정한 애착심을 두지 않도록 넘치지 말고, 항상 담박을 주로 할 것이며, 또는 일정한 애착심을 두지 않도록 공부삼아 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 갈 때의 최후법문(最後法門)은 「착 됨이 없이 떠나라(莫着而去)」는 말씀 외에 더 요긴함이 없는 것이다.

9) 부동심(不動心)을 양성(養性)하는 공부
일상 생활하는 중 우리의 마음이 경계를 대해서 시끄럽고 요란하지 않게 하기를 공부삼아 해서 천만 경계를 대할 때 부동함을 태산과 같이 하여 철주(鐵柱)의 중심(中心)이 되고 석벽(石壁)의 외면(外面)이 되기에 노력해야 될 것이다.

10) 보림(保任)하는 공부(工夫)
보림을 하라는 것은 마음을 일원에 합하자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는 「응(應)하여도 주(住)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법문으로써 보림 공부를 하셨고, 또 회광반조(廻光返照), 화광동진(和光同塵), 도광(韜光),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함축(含蓄)등의 공부며, 정성으로써 들어가고, 묵묵함으로써 지키고, 부드러움으로써 쓰라(以誠而入 以默而守 以柔而用)는 말씀은 모두 보림공부를 잘하라는 것으로써, 대원기(大圓氣), 정기(正氣), 영기(靈氣), 지기(至氣), 호연지기(浩然之氣), 정일지기(精一之氣), 원기(元氣), 중기(中氣), 진기(眞氣) 등이 모두가 일원의 기운이니 이에 합하도록 정진해야 될 것이다.
다시 수양의 요령을 말하자면, 적적성성시(寂寂惺惺是)니, 풀어 말하면 고요한 가운데 대중을 놓지 않는 것은 옳은 것이요, 적적무기비(寂寂無記非)니, 풀어 말하면 고요한 가운데 대중잡는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그른 것이며, 성성적적시(惺惺寂寂是)니, 풀어 말하면, 대중을 잡아 나가다 대중을 잡았다는 마음까지 놓은 것은 옳은 것이요, 성성산란비(惺惺散亂非)니, 풀어 말하면 대중 잡아 가는 중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그른 것이다.

4. 사리 연구 공부(事理硏究工夫)의 길
사리 연구 공부(事理硏究工夫)는 ①마음을 찾는 공부 ②스스로 의심을 걸어서 궁굴려 깨치는 공부 ③우연히 보고 듣고 말하다가 깨치는 공부 ④ 스승이 가르치고 훈습(薰習)시켜서 깨치는 공부 ⑤실지 체험으로 깨치는 공부 ⑥심천(心天)에 오욕(五慾)의 흑운(黑雲)을 거두고 혜월(慧月)이 솟아오르게 하는 공부 ⑦견성보다 수증(修證)이 훨씬 어려움을 아는 공부 ⑧윗 스승의 인허(認許)를 얻는 공부 ⑨스승이 제자에게 다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 자각케 하는 공부 ⑩대각(大覺)의 경로를 아는 공부인 바, 안으로 깨치는 데 있어서는 경전연습(經典練習), 회화(會話), 강연(講演), 성리(性理), 청법(廳法), 문목연마(問目硏磨), 수양(修養), 취사(取捨)가 있어야 할 것이다.

1) 마음을 찾는 공부
심우(尋牛), 이 무엇고,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 또는 우주(宇宙)의 대소유무(大小有無)와 인간(人間)의 시비이해(是非利害)되는 이치(理致), 또는 중생(衆生)의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萬物)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진급 강급(進級降級) 및 복불복(福不福) 죄 불죄(罪不罪)의 이치, 그리고 불생불멸(不生不滅), 인과보응(因果報應)의 도리는 마음을 찾음으로써만 요달(了達)되는 것이다.

2) 스스로 의심(疑心)을 걸어서 궁굴려 깨치는 공부
혜두(慧頭)를 단련하는 데 있어 적은 의심(疑心)으로부터 큰 의심에 이르기 까지 의심이 오고 가는 중 한 의심 아래 만 가지 의심이 함께 비어 삼라만상과 대지 허공이 하나의 참다운 의심 속에 나타나는 경지에 들어가야 될 것이다. [정전에 있는 20 항목의 의두(疑頭)], 그러나 처음에는 자기 힘에 알맞는 적은 의심이나 또는 경전에서 모르는 것을 하나 씩 들고 궁글려 갈고 닦는 가운데 진리를 깨치게 되는 것이니, 이는 마치 낚시질을 할 때 고기가 단단히 걸려야 빠지지 않는 것과 흡사한 것이다.

3) 우연히 보고 듣고 말하다가 깨치는 공부
우리가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 보고 듣고 말 하다가 우연히 깨치는 수가 있으니 한 예를 들면 어느 수도인이 고기전에서 고기를 사다가 정한 고기를 달라고 했더니 고기 파는 사람이 어느 것이 정한 것이냐고 묻는 바람에 대도를 깨쳤다는 것이다.

4) 스승이 가르치고 훈습시켜서 깨치는 공부
스승이 제자를 법하(法下)에 두고 훈습(薰習)시키는 것이 마치 불무간에서 불무에 쇠를 넣고 도야(陶冶)시키는 것이나 닭이 알을 품는 것, 또는 자라가 알을 김쏘이는 것과 같은 것이니 남의 스승이 되었거든 마땅히 자기가 훈습에 공을 쌓아야 할 것이다.

5) 실지 체험으로 깨치는 공부
이는 불교(佛敎)의 가르쳐 주신 바 법문에 의해서 닦아가며 천신만고(千辛萬苦)와 천인만내(千忍萬耐)에서 깨치는 것을 이름인 것이다.

6) 심천(心天)에 오욕의 흑운(黑雲)을 거두고 혜월(慧月)이 솟아오르게 하는 공부
이는 금욕(禁慾)과 절욕(節慾)으로 공부를 오래 정진하여 묘지(妙智)를 오득(悟得)하는 것으로서 선가구감에 「무애청정혜(無碍淸淨慧)는 다 선정(禪定)으로 인해서 생한다」는 말도 이를 의미한 것이다.

7) 견성(見性)보다 수증(修證)이 훨씬 어려움을 아는 공부
견성보다 초견성(初見性)으로부터 확철대오(廓徹大悟)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단(階段)이 있고 수증(修證) 또한 그러한 것이로되 견성은 쉬우나 수증은 훨씬 어려운 것이니, 이치를 알아서 끊임없이 수행해야 될 것이다.

8) 윗 스승의 인가를 받는 공부
영적(靈的)으로 일시(一時) 솟아오르는 지혜(知慧)나, 또는 우연히 깨달은 진리라도 바로 안 것 같이 하지 말고 오래 비축(備蓄)하여 두고 오래 마탁(磨琢)한 뒤에 자기 이상(自己以上)의 선지식(善知識)에게 올바른 인가(認可)를 받은 후라야 그것이 사지(邪智)가 아닌 정지(正智)가 되는 것이다.

9) 스승이 제자에게 다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 자각(自覺)케 하는 공부
아무리 확철대오한 스승이라도 그 제자에게 다 보여 주면 그른 지혜가 되어 제자의 깊은 지혜를 계발(啓發)시키는데 마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인(故人)이 사은(師恩)을 아는 데 있어 스승의 도덕(道德)이 중(重)하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하여 설파(說破)해 주시지 않음이 중하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10) 대각(大覺)의 경로를 아는 공부
대각을 하자는 것은 우리의 마음 자리, 곧 일원(一圓)의 이치를 깨닫자는 것으로써 깨치는데 있어서는, 첫째 허령(虛靈)이 열리고, 둘째 참 지각(知覺)이 열리고, 셋째 신명(神明)이 통하는 것인데, 그 자세한 경로는 대종경(大宗經)을 참조하되 일원의 진리만 깨치고 보면 만사 만리를 다 통하게 될 것이니 법신불(法身佛), 진여(眞如), 여래(如來), 법왕(法王), 하느님, 상제(上帝), 무극(無極), 태극(太極), 불성(佛性), 심군(心君)등의 이치가 모두 하나 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사리연구의 요령을 말하자면 점수돈오(漸修頓悟)이니 점수돈오는 선행후각(先行後覺)의 경지로서 처음에는 진경(眞境)을 모르고 그저 닦아 나가다가 문득 깨쳐 합치된 것이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선각 후행(先覺後行)의 경지로써 먼저 깨쳐 알아 가지고 뒤에 그 진리대로 닦아 나가서 합치된 것이요, 돈오돈수(頓悟頓修)는 각행일치(覺行一致)의 경지로써 선후 없이 일시에 합치된 것이다.

5. 작업취사(作業取捨) 공부의 길
작업취사 공부는 ①유무념 대조하는 공부, ②계율을 잘 지키는 공부, ③육근 동작을 바르게 하는 공부, ④조심하는 공부, ⑤남을 유익주는 공부, ⑥겸양의 도를 실행하는 공부, ⑦넉넉한 처사를 본 받는 공부, ⑧중도(中道)를 잡는 공부, ⑨상(相)을 없애는 공부 ⑩심신을 원만하게 쓰는 공부인 바, 안으로 취사하는데 있어서는 참회, 주의, 실행(實行), 결단력(決斷力), 상시일기(常時日記) 및 연구(硏究)와 수양(修養)이 있어야될 것이다.

1) 유무념(有無念 대조(對照)하는 공부
유무념 공부는 모든 경계를 처리한 후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주의심을 가지고 했는가, 놓고 했는가를 대조 반성하는 마음 공부인데, 첫째 처음 공부할 때는 이를 잘하고 못한 것을 가리지 않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 했으면「유념」의 번수에 넣고 설사 일은 잘 되었다 할지라도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마음을 놓고 했으면 「무념」의 번수에 넣어서 챙기는 마음을 주로 할 것이며, 둘째 조금 공부가 되어 가면 일의 잘되고 못된 것으로써 유념, 무념의 번수를 계산하되 본교에서 하라는 삼학팔조, 사은사요, 솔성요론 등과 말라는 계문을 표준으로 하되 특히 잘된 것으로 표준할 것이며, 셋째 더 능숙해지면 경계수를 크게 잡아서 하루 네 때나 또는 하루를 한 경계로 잡고 마음이 끌리고 안 끌림을 표준 삼되, 특히 잘된 것을 대중잡을 것이며, 넷째 아주 능숙해지면 하루와 한 달과 일년 간에 간단 없이 일념이 계속이 되는 것을 표준 삼되 정(靜)한즉 도심(道心)이 나타나고, 동(動)한즉 덕행이 나타나서 불지(佛地)에 계합 자재(契合自在)하자는 공부이다.
다시 유무념 공부의 내역을 말하자면 유념 공부는 마음을 챙기는 공부인데 ①구방심 정심(求放心 正心)의 공부이며 ②계문을 잘 지키는 공부이며 ③은혜를 알아서 은혜를 갚자는 공부이며 ④육식(六識)이 육진(六塵) 중에 출입하되 섞이고 물들지 말자는 공부이며 ⑤마음 쓰는바가 중용(中庸)이 되고, 또는 평상심(平常心)을 갖자는 공부이며 ⑥구경(究境)에 들어가서는 여의 자재(如意自在)하고 만행(萬行)이 원만하자는 것이요,
무념 공부는 ①마음 가운데 사심 잡념을 없이 하자는 공부이며 ②염착심(染着心)과 망상(妄想)을 없이 하자는 공부이며 ③모든 상(相)을 없애자는 공부이며 ④구경에는 주(住)함이 없는 열반(涅槃)에 들자는 것이니, 요약하면 유념 공부는 동정간 일심을 모으자는 공부이며, 무념 공부는 망상을 버리자는 공부로서 유념 공부를 잘하면 무념 공부가 될 것이며, 무념 공부를 잘하면 따라서 유념 공부도 잘 될 것이다.

2) 계율(戒律)을 잘 지키는 공부
계율을 지키는 데 있어서 국민으로서는 국법을 잘 지켜야 될 것이요, 세계에 있어서는 국제 헌장(國際憲章)을잘 지켜야 될 것이요, 교인으로서는 그 교단의 정한 계율을 잘 지켜야 될 것이로되, 특히 수도인으로서는 각자 습성의 부족한 것을 따라서 심계(心戒)를 정해 놓고 하루와 한 달과 일년으로 마음 가운데 제일 무겁고 어려운 계율부터 지켜가는 데 재미를 붙여 공부해 나가야 될 것이다.

3) 육근동작(六根動作)을 바르게 하는 공부
일상생활을 늘 바르게 보고, 늘 바른 생각을 가져 보고, 늘 바르게 들어보고 늘 바른 말을 해 보고, 늘 바른 행을 공부삼아 해서 육근동작하는 바가 법의선(法線)을 타고 나가야 될 것이다.

4) 조심하는 공부
삼세 제불제성이 성자가 되신 것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바르게 챙기고 조심하여 살고 가신 데에 있는 것이니 스스로 추호도 뉘우칠 바가 없고 후인들이 자취를 본받을지언정 그 허물을 말할 수 없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성현들이 말씀하시기를「엷은 어름을 밟는 것 같이 하라(如履薄氷)」 또는 「늘 상제를 모신 것 같이하라(對越上帝)」또는 「매사에 공경심을 놓지 말라(常毋不敬)」 또는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라(愼其獨)」 또는 「열눈이 보고 열 손가락이 가르치고 있으니 그 엄하도다(十目所 十手所指 其嚴平)」 또는「전전긍긍(戰戰兢兢)」하라고 하였으니 이를 행하시는 분과 말씀하시는 분은 각각 다르지만 그 모두 마음을 챙기고 조심하라는 교훈인 점에서 공통한 것이다.

5) 남을 유익(有益)주는 공부
사람 사람이 지식이 많이 있고 재산이 많이 있어도 남을 유익 주어 본 사람이어야 유익 주는 것이지, 유익 주어 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을 지내되 제 아는 것, 제 물건 그대로 지니고 있다가 조금도 쓰지 못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니, 우리는 정신으로나, 육신으로나, 물질로나 남을 유익 주려 것을 공부삼아 하여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보살은 세세생생 남을 유익주려는 것으로써 당신의 서원과 직업을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성불(成佛)하고저 하는 자가 자비 제중(慈悲濟衆)의 경로를 밟지 않고서는 성불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 좋은 예로는 관세음보살이 빈천과 병고에서 헤매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의 몸과 한데 섞이어 쓴맛을 같이 보아가며 건저 주신 것이나,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신음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항상 지옥 문전에서 울고 계셨다는 것 등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6) 겸양(謙讓)의 도(道)를 실행하는 공부
가정에서는 부모 형제 처자 간에 서로 명예스럽고 좋은 일은 겸양함을 공부로 하고, 사회나 국가에 있어서도 명예스럽고 좋은 일은 서로 겸양하는 것으로서 공부를 삼아 실행하면 가정, 사회, 국가 및 전 세계는 자연히 평화안락케 될 것이니, 각자 자신부터 이를 실천 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7) 넉넉한 처사를 본받는 공부
마음을 써 나가되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럽고 넉넉하게 쓰기를 공부하여 과거 현재 모든 도인들의 처사하신 행동이나 글이나 말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을 너그럽고 크고 넉넉하게는 할 지언정 막된 말이나 막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성현님들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또는 「내가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으면 천지의 모든 좋은 기운과 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나에게 응하지만 만일 여유 없는 일과 행동을 한다면 천지간의 모든 악한 기운이 모여들어 자연 나에게 해가 오고 나의 앞 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원망을 품고 있어도 천지 기운이 막혀서 그 일을 성사(成事) 하기가 어렵다」고 하신 말씀도 있지만 대인의 공부하는 길은 남의 앞 길을 열어는 줄지언정 남의 앞 길을 막는 일은 절대로 아니하는 것이다.

8) 중도(中道)를 잡는 공부
매일 살아나갈 때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의 경우를 당해서 끌리지 말고 중도를 잡아서 처사하며, 또는 공부를 해 나가는 데에도 동정일여(動靜一如) 공부와 영육쌍전(靈肉雙全) 공부와 공부사업을 병진하는 공부를 할 것이며 또 삼학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수양을 잘한다고 해서 늘 좌선만 한다든지, 연구를 잘한다고 해서 늘 생각만 계속한다든지 취사를 잘한다고 해서 늘 행(行)에만 국집될 것이 아니라 선(禪)할 때는 선하고, 연구할 때는 연구하고 행할 때는 행하여 오직 중도를 잡아서 어느 곳 어느 일에 기울어지거나 우치(愚痴)하거나 과(過)하거나 불급(不及)함이 없게 하는 것이 천하의 대도(大道)인 것이니 이 중도 공부에 노력해야 될 것이다.

9) 상(相)을 없애는 공부
상이 떨어진 행이라야 천지 같은 무위 자연행(無爲自然行)이 될 것이요, 부처님 같은 대 무상행(大無相行)이 나타 날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에 이르시되「일체상을 떠난 것이 곧 부처」라 하셨으며「정전」에도「천지의 응용무념(應用無念)의 도를 체받으라」하셨고 노자께서도「상덕(上德)은 덕이란 상이 없으므로 참다운 덕이 된다」고 하셨으니, 공부인은 상을 없이 하는데 노력해야 될 것이다. 만일 상이 있으면 화분에 든 나무와 같아서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0) 심신(心身)을 원만(圓滿)하게 잘 쓰는 공부
일상행활 중 우리가 마음을 쓰고 말을 할 때, 보고 들을 때, 또는 몸을 동작할 때, 어느 때를 막론하고 공부삼아서 원만하게 해 볼 것이니 부처님같이 두렷한 마음을 가져야 육도 사생을 다 사랑할 수 있으며, 두렷한 말을 해야 삼계범성(三界凡聖)에게 다 들려 줄 수 있고, 두렷한 눈을 가져야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를 밝게 볼 수 있으며 두렷한 귀를 가져야 인천계(人天界)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원만한 법을 행하여야 삼계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심신 동작하는 바가 모두 일원행(一圓行)이 되고 보면 대 정성행(大精誠行), 대 진실행(大眞實行), 대 겸양행(大謙讓行), 대 해탈행(大解脫行), 대 무상행(大無相行), 대 중도행(大中道行), 대 보은행(大報恩行), 대 자비행(大慈悲行), 대 원만행(大圓滿行) 등의 덕행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다시 취사의 요령을 말하자면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을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는 것이니 옳음을 취하면 이(利)가 생하고 그름을 버리면 해(害)가 멀어지는 것이다.

6. 삼학공부 중 대기사(大忌事)
우리가 삼학공부를 하는가운데 불신(不信)과 탐욕(貪慾)과 나(懶)와 우(愚)가 대 기사가 되는 것을 정전에 자상히 밝힌 바 있거니와 공부를 진행하는 중에 크게 꺼리는 일이 몇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수양중 대기사
첫째, 무기공항(無記空抗)에 빠져있는 것이니 수양하는 길에 무심(無心) 공부나 공심(空心) 공부는 분별심(=雜心)을 버리자는 것이요, 본래 마음조차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살아 있지 않고 죽은 마음(死心, 灰心, 空心, 無心, 無記空)이 되는 것은 바로 지옥에 빠지는 일이니 삼독의 해보다 더 큰 것이다. 정(定)한 이외의 수면은 곧 마장이라 정신이 단절되는 것이니 주의해야 될 것이다.
이에 한 예를 들면 어느 노파가 청년 남승 하나를 가르치다가 어느 경계를 주어 보고 그 마음을 물어본즉 대답하되 회심(灰心)과 같다 하니 노파가 그 집을 불사르고 쫓아버리면서 내 도인을 길드이려 하였더니 무정지물(無情之物) 목석을 길드였다고 하였다는데, 이는 바로 무기공(無記空)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대도를 수행하는 데에는 독거(獨居)하는 것보다 엄사(嚴師)를 모시거나 또는 대중 가운데 처하여 있는 것이 훨씬 성성(惺惺)해서 혼자 백 년 걸릴 것이 십년에, 십 년 걸릴 것이 단 일 년에 끝마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이 죽고 보면 그것은 마치 물이 없는 우물이나 폐한 가옥이나 기운 없는 허공과 같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니 도에 뜻한 자는 이를 명심하여 그 길에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둘째, 허령(虛靈)이 나타나는 것이다. 영지(靈智)가 나타나는 데에는 둘이 있으니 그 하나는 수도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진령(眞靈)과 그 둘은 순간 반짝이는 허령(墟靈)으로서 전자는 맑은 물에 백물(百物)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이 천만 사리를 닿는 대로 알게되는 영통(靈通)이요, 후자는 때에 어긋나 피는 꽃처럼 오래 가지도 못하려니와 열매도 맺지 못하나니 이런 유(類)는 성현의 말변지사(末邊之事)요, 요괴지사(妖怪之事)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나타난 허령(虛靈)이라도 그대로 비축(備蓄)해 두면 진령(眞靈)이 되는 수도 있지만 허령이 뜨는데 재미를 부치는 자는 정도를 놓고 사도(邪道)에 드는 사람이라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연구 중 대기사
첫째, 대각을 몰록 이루려고 급속한 마음을 두는 것이니 이는 경전만 보거나 또는 선(禪)만 하거나 하여 도를 단번에 얻으려는 것을 이름이다. 이것은 마치 종이장 속에서 여의보주(如意寶珠)나 해인(海人)이나 마니보주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며 채광인이 수고 없이 마탁(磨琢)된 금을 얻으려는 것과 같다. 불가의 말에 「근기가 높은 자는 쉽사리 불지(佛地)에 오른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다생(多生)동안 쌓아온 노공(勞功)의 결정이며 결코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석가세존께서도 숙겁에 쌓으신 오백생의 공(功)과 현생의 육년 적공으로 대각을 이루시었고 우리 대종사님께서도 구원겁래(久遠劫來)로 세워오신 대원력과 8, 9세부터 26세까지 16년동안 한결 같은 대공을 쌓으신 나머지 대각을 이루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천하사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성현이라고 생이지지(生而知之)하신 분은 없는 것이니 마땅히 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 사견(邪見)에 걸려 있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스승이 되어서 위로 스승이 없어지고 좌우로 충고할 만한 어진 벗이 끊어져 버리는 것이니, 하근(下根)으로서의 가장 조심하고 꺼려야 할 큰 병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근의 병〔邪見의 病〕에 걸린 자는 마치 돌을 가지고 금으로 오인하고 있는 자와 같은 것이니 적은 법에 집착(執着)한 자는 마침내 대도를 얻지 못할지라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더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아직 부처를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서 윗 스승의 지도가 끊어진 것같이 위태한 사람은 없다」고 하시었다.

3. 취사(取捨) 중 대기사
첫째, 제가 짓고 제가 받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천지만물 허공법계 즉, 사은(四恩)이 밭이 되고 각자의 심신 동작이 종자가 되어 호리도 틀림 없이 나타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해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종사께서 이르시되 「어리석은 중생이 복이 돌아오기만 바라고 있는 것은 마치 농사 짓지 않은 농부가 수확하려는 것과 같다」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진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 범의 선(線)이 없이 사는 것이니 범부중생이 자행자지하면서 사는 것은 달리는 기차가 선(線)을 벗어난 것과 같다. 이에 대종사께서는 「공부하는 길로써」 삼학 팔조(三學八條)의 선(線)과 「사람 노릇하는 길로서」 사은사요와 계문 및 솔성요론(率性要論)의 선(線)을 정하여 주셨으니 우리는 일체 만사를 작용할 때 과불급(過不及)의 탈선이 아니 되도록 중도실행(中道實行)을 하여야 할 것이다.

4. 삼학과 일상생활
매일 본교 일상수행의 요법 9조와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로써 공부의 강령을 삼고 나아가되 특히 다음과 같이 세 때를 정하고 공부하는 대중을 잡아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 수동정진시간
아침마다 십분이상 선공부(禪工夫)에 전진하며 날마다 5분간 알맞은 의두연마에 정진하며 유무념(有無念) 공부에 정진할 것이니 이러하면 무시선(無時禪)과 무처선(無處禪)이 아울러 실행되는 것이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모든 행사를 마친 뒤 잠시 고요히 앉아 마음을 찾아 하나하나 살펴보고 닦은 뒤 큰 서원을 다시 묶으면서 그날 하루의 일을 계획 할 것이다. 「이 몸을 이생에 제도하지 목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리오〔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둘째, 보은 노력 시간
심신 노력과 수입중 일조(一租)로써 보은미(報恩米)를 실시할 것이니 이러하면 처처불상(處處佛像)과 사사불공(事事佛供)이 실행되는 것이다. 낮에는 심신 노력을 하되 이 몸은 사은(四恩)의 빚〔負債〕임을 깨달아서 힘 미치는 대로 노력하여 지혜 계발과 보은생활을 TKd전하여 남의 힘에 내가 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남이 살도록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은보은(知恩報恩)하면 천생만생(千生萬生)의 생문(生門)이 열리고 배은 망덕하면 천사만사(千死萬死)의 사문(死門)이 열리는 것이다.
세째, 참회 반성 시간
일말(日末)과 월말(月末)에 각각 참회 반성을 할 것이니 이러하면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 아울러 실행되는 것이다. 매일 저녁 취침 전에 심고를 올리고 잠시동안 그날 하루의 지낸 일을 하나 하나 반성하여 잘못된 일이 있으면 묵묵히 참회 반성한 후 안면(安眠)에 든다. 각자의 조물주는 각자의 마음이니 일체를 제가 짓고 제가 받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매일 세 때로서 대중잡는 시간을 두며 매월 매년에 또한 특별기도를 행할 것이다. 1일을 수도정진 기도의 날로 15일을 보은 감사 기도의 날로 회일(晦日)을 보은 참회 개과 기도의 날로 하고 정월(正月)을 수도 정진 기도의 달로, 6월을 보은방생(放生) 기도의 달로, 12월을 참회 청산 기도의 달로 정하면 좋을 것이다.

7. 삼학공부의 결과
삼학(三學)공부를 오래 오래 계속하면 삼대력(三大力)을 얻게 된다.

1. 수양력(修養力)
마음의 자주력(自主力)을 얻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자유로 하며 극락을 마음 대로 수용하고 업문(業門)을 자유로 열고 닫을 수 있으며 삼대력은 얻는 근본이 된다.

2. 연구력(硏究力)
일(事)과 이치를 빠르게 알아내는 지혜력(智慧力)을 얻어 이무애 사무애(理無碍 事無碍)가 되고 지혜가 족족(足足)하여 세세 생생 어둡지 아니하며 삼대력을 얻는 근본이 된다.

3. 취사력(取捨力)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놓는 용단력(勇斷力)을 얻어 만행(萬行)이 원만 구족하게 되고 만복(萬福)이 족족해서 세세 생생 복만 짓게 되며 삼대력을 얻는 근본이 된다.

8. 결론(結論)
이상 삼학수행에 대하여 논한 바를 간추려 대종사님의 법설로서 끝맺고자 한다.
□동정(動靜)간 삼대력 얻는 빠른 길
대종사께서 동정간 무시로 삼대력 얻는 빠른 길을 말씀하시니 다음과 같다.

1. 수양력 얻는 방법
첫째, 모든 일을 작용할 때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빼앗아 가는 일을 짓지 말고 또한 그 경계를 멀리 할 일.
둘째,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 애착 탐착을 두지 말고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일.
세째,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말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말아서 오직 그 일 그 일에 일심을 얻도록 노력할 일.
네째, 여가 있는 대로는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일.
다섯째,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다 마친 사람은 과거 도가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知見)을 넓힐 일.

2. 연구력 얻는 방법
첫째,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 그 일 그 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일
둘째,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를 힘쓸 일.
세째,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 의심이 발하거든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 하도록 힘쓸 일.
네째, 우리의 경전 연습 하기를 힘쓸 것이요.
다섯째,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다 마친 사람은 과거 도가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知見)을 넓힐 일.

3. 취사력 얻는 방법

첫째, 정의인 줄 알거든 대소사(大小事)를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일.
둘째, 불의인 줄 알거든 대소사를 막론하고 죽기로써 아니 할 일.
셋째, 모든 일을 작용할 때 즉시 실행이 되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고 정성을 계속하여 끊임없는 공을 쌓을 일.
재래 모든 도가의 공부하는 법을 보면 정할 때 공부에만 편중하여 일을 하자면 공부를 못한다 하여 혹자는 부모 처자를 이별하고 산중에 들어가 일생을 지내며 혹자는 비가 와서 보리 멍석이 떠내려가도 모르고 독서만 하여 그로써 유일의 공부법을 삼았나니, 이 어찌 원만한 공부법이라 하리오. 우리는 공부와 일을 둘로 보지 아니하고 공부를 잘 하면 일이 잘 되고 일을 잘 하면 곧 공부를 잘했다고 하여 동정 두 사이에 계속적으로 삼대력 얻는 법을 말하였나니 제군은 영육쌍전하고 동정에 간단이 없는 무상대도에 힘쓸 지어다.
위에서 논한 바 본교의 삼학공부법과 과거 제가(諸家)의 경론에 나타난 수행법과 연결시켜 이를 도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 팔정도(八正道)와 삼학(三學)
혜(慧)
정견(正見)... 사리간에 바르게 아는 공부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을 하는 공부
정어(正語)... 바르게 말을 하는 공부
정업(正業)... 바른일을 하는 공부
정명(正命)... 천명(天命)을 순수(順受)하여 안분(安分)의 도를 지키는 공부
계(戒)
정어(正語)... 바르게 말을 하는 공부
정업(正業)... 바른일을 하는 공부
정명(正命)... 천명(天命)을 순수(順受)하여 안분(安分)의 도를 지키는 공부
정정진(正精進)...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에 간단(間斷)없이 일심(一心)으로 정진하는 공부
정(定)
정정진(正精進)...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에 간단(間斷)없이 일심(一心)으로 정진하는 공부
정념(正念)... 마음 가운데 일호(一毫)의 사심(邪心)없이 일념(一念) 즉 정념(正念)을 갖는 공부
정정(正定)... 일심불란(一心不亂)한 일정심(一定心)을 갖는 공부

□ 육도(六道)와 삼학(三學)
계(戒)
보시(布施)... 다생(多生)을 정신 육신 물질(精神 肉身 物質)로 남을 위하여 기쁘게 바치는 공력(功力)
지계(持戒)... 다생(多生)을 계문(戒文)을 끊고 지키는 공력.
정(定)
인욕(忍辱)... 다생(多生)을 하고 싶은 것과 욕(辱)된 것을 참는 공력
정진(精進)... 다생(多生)을 간단 없이 일심(一心)으로 정진하는 공력.
선정(禪定)... 다생(多生)을 청정일념(淸淨一念)을 닦는 공력.
혜(慧)
정진(精進)... 다생(多生)을 간단 없이 일심(一心)으로 정진하는 공력.
선정(禪定)... 다생(多生)을 청정일념(淸淨一念)을 닦는 공력.
지혜(智慧)... 다생(多生)을 사리간 배우고 깨치는 공력.